'줘야 할 돈은 가능한 한 늦게, 받을 돈은 최대한 빨리' '자재구매 등은 외상으로, 판매대금은 현금으로' 돈을 모았거나 사업에 성공한 이들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바일 세상이 되면서부터는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무슨 무슨 '페이'를 써달라고 성화다. 터치 한번으로 빛의 속도로 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넘쳐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빨리 지불해야만 할까. 돈 지불할 시간을 아껴 더 벌라는 얘긴가. 하기는 지불 수단의 발전이 없었으면 애초에 보이스피싱도 없었으리라.

▶시장의 호응을 못받은 제로페이와 달리 모바일 기반의 지역화폐는 제대로 바람을 타고 있다.
지역화폐는 캐나다 밴쿠버섬의 코목스밸리가 원조다. 1983년 공군기지 이전과 목재산업 침체로 마을에 불황이 닥쳤다. 실업률이 18%에 달했다. 마을의 한 컴퓨터 기사가 녹색달러를 만들어냈다. 마을주민들끼리 노동과 물품을 교환할 수 있는 지역화폐였다. 이후 영국, 호주, 뉴질랜드, 미국, 일본 등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는 처음 두레나 품앗이 쯤으로 도입됐다. 그러다가 이른바 보편적 복지시대를 맞으면서 그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이왕에 나눠주는 현금복지를 지역화폐에 실어 보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효과가 기대돼서다.

▶요즘 오나 가나 인천e음카드가 화제다.
"아직도 가입하지 않았냐" "안 쓰면 바보" 등등이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 앱도, 카드 색깔도 세련돼 보인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고 불평하는 지자체의 시책 중 이만한 호응을 얻은 게 언제 있었나 싶다. 핵심은 파격적인 동기부여다. 6∼10%의 확실한 현금 캐시백의 위력이다. '지역사랑운동'이라거나 '몇 % 할인' 등 미지근한 혜택들이 아니다. 바람이 너무 거세서인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금 캐시백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의 상실감은 어떡할 거냐. 씀씀이가 큰 부자가 더 많은 돈을 돌려받게 된다. e음으로 골드바를 사재기할 수도 있다. 노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은 혜택이 없다. 인천시 재정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냐 등등이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기우(杞憂)는 아닌지.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더 돌려받는 구조이니 큰 문제가 없다. 동네 금은방들도 어려운 소상공인들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 우리 세금을 가장 실속 있게, 투명하게 쓴다는 점이다. 세수는 넘쳐난다지만 그 세금은 늘 허투루 낭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게 우리 정부나 지자체, 국회나 지방의회의 수준이다.
납세자들의 통장에 꼬박꼬박 되쏘아주는 인천e음 캐시백, 여기에는 혈세 누수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경상도도, 전라도도, 나아가 북한까지도 인천e음을 배워갈 일이다.

/정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