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인천대 기초교육원 객원교수

 

요즘 유튜브계를 장악한 박막례 할머니는 88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다. 구글의 최고경영자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는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을 두고 "가장 영감을 주는 채널"이라고 극찬했다. '염병하네', '뭣 헌다고 이걸 한대' 등 할머니가 손녀에게 내뱉는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하지만 할머니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 속에 느껴지는 삶의 진정성 때문인지 저절로 엄지손가락과 구독버튼을 누르게 된다.

1947년생인 그는 2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막례'라는 이름을 받았다. 오빠 둘은 6·25 때 모두 죽었고, 아버지는 집안에 아들이 없으니 가르칠 사람이 없다며 딸들에게 집안일만 시켰다. 스무살에 결혼하고 3남매를 낳자 남편은 집을 나갔고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파출부, 식당 일, 리어카 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야 말로 온갖 세파를 다 겪은 우리네 할머니의 삶을 살아온 분이다. 그러던 그의 삶이 뒤집힌 건 손녀가 우연히 유튜브에 올린 영상 덕분이다.

사실 이 영상들의 콘텐츠는 별것 없다. 요리, 화장, 여행, 쇼핑 그리고 먹방, 대부분의 유튜버가 영상으로 찍어 보여주는 흔한 것들이다. 하지만 박막례 할머니가 하면 뭔가 색다르다. 70세가 넘은 할머니의 도전정신이랄까. 아님 연륜에서 나오는 디테일이라고 할까. 젊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들인데 할머니의 좌충우돌 실수담과 할머니만의 거친 표현 방식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할머니 채널의 어떤 팬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이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일까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이거 질문한 사람 꿈이 혹시 정치인이여? 정치인 아니면 그 꿈은 진즉 접는 게 좋을 것이여.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여. 내가 70년 넘게 살아보니까 그래.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냐. 북 치고, 장구 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라고 대답한다. 웬만한 내공을 갖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한자의 '덕(德)'이라는 글자는 걸어간다는 의미의 척(彳) 과 곧을 직(直) 그리고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이 글자를 풀이해 보면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이 정직이 누구에게 정직하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막례 할머니께 질문을 던진 팬처럼. 그러나 '덕'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정직함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에 대한 배려를 이기심이라는 이름으로 지우고 남에 대한 배려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배려가 공동체를 버리고 '내 멋대로 산다'는 말은 아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나의 도(道)는 하나로 꿰뚫어졌다"는 공자의 말에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해져 만들어진 글자로 '마음에 집중해라', 즉 '자신의 마음을 오로지 해라'라는 뜻이다. '恕'는 여(如)와 心이 합해져 만들어진 글자로 '마음을 같게 해라', 즉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때문에 내 멋대로 살되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함께 사는 삶의 기본이다.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에서 이런 동양철학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연륜 때문이다. 공자는 나이 칠십을 일러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을 좇아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했다. 칠십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학문에 뜻을 두는 '지우학'(志于學)에서부터 들은 것을 모두 이해한다는 '이순'(耳順)까지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학교 교육은 받지 못했어도 할머니가 '종심소욕'(從心所欲)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서고(而立), 의혹됨을 견디고(不惑), 천명을 아는(知天命) 과정 속에서 한시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을 버리면 절대 안 돼요. 희망을 버렸으면 다시 주워 담으세요. 그러면 돼요. 희망은 남의 게 아니고 내 거라서 버렸으면 도로 주워 담으세요.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거야." 할머니의 최근 명언이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숭고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요돼서는 안 된다. 각자 자신의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다보면 세상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