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
▲ 故 임병래 중위
▲ 故 임병래 중위
▲ 故 홍시욱 하사 동상
▲ 故 홍시욱 하사 동상

 

지역 주둔 북한군 정보 수집 위한 영흥도 'X-RAY작전' 투입돼 활약
미군 상륙 하루 전 敵에 포위되자 기밀보호 위해 '만세' 외치고 전사


6·25 전쟁이 낙동강 지구까지 밀린 상황에서 전세를 완전히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에는 대한민국 해군첩보부대의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다.

활약의 주역은 해군 고(故) 임병래 중위와 고(故) 홍시욱 하사다.

임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 출생으로 해군에 입대해 해군정보국 창설 당시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영흥도 첩보전 조장을 맡기도 했다.

홍 하사는 1929년 출생으로 해군 신병 10기 입대, 인천상륙작전의 첩보대원으로 참여해 임무를 완수하고 1950년 9월 장렬히 전사했다.

전쟁 당시 인천지구에는 북한군 정규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고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영흥도 첩보전인 일명 'X-RAY(엑스 레이)' 작전에서 해군정보국 첩보대는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했다.

주로 서울 등지에서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인천해안포대 위치와 병력배치 상황 등을 파악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영흥도 첩보기지에 대한 철수명령이 있었으나 미군이 상륙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로 기습했다.

임 중위를 비롯한 해군 첩보대원 9명과 의용대원 30여명은 적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적으로부터 포위될 위기에 직면하자 임 중위와 홍 하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공격을 차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 대원들은 십리포에 정박 돼 있던 보트에 승선해 탈출했다. 하지만 두 대원은 탈출에 실패,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이들은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이 탄로 날 것으로 판단해 적을 쓰러트린 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자결했다.

이 시기는 인천상륙작전을 불과 24시간 남긴 시점이었다. 역사적인 작전의 성공을 위해 첩보임무를 완수하고 조국을 위해 장렬한 죽음을 택한 셈이다.

임 중위와 홍 하사는 군사기밀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고 목숨을 걸고 이를 지킨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한 임 중위와 홍 하사의 공로를 기리고자 1953년 7월 미국 은성훈장을 수여했다.

정부는 1954년 1월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 돼 있다.

국가보훈처는 두 호국영웅을 2014년 9월,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한 바 있다.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