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한국의 역사는 파벌을 지어 싸우는 정치 탓에 나라가 분열되고 결국 타국의 침략야욕에 희생되어 국민의 굴욕적 삶을 보여준다. 그것도 피해의 상흔이 아물 만하면 겪는 반복적인 형태이다. 그런데 그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어 정치판의 극한 대립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한국의 정치가 망국의 당파싸움으로 국익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던 시대와 똑같아, 지금도 세계가 정복의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라면 우리는 꼼짝없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우리끼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타국과 싸워서는 잘 이겨내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타국을 침략하지 않은 선량한 나라라 말한다면, 어째 우리끼리는 그리 죽기 살기로 싸우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한국정치는 역사에서 보던 대로 여전히 정적을 쓰러트리고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양상으로 치달으며 극한 대립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정치의 DNA라면 큰 걱정이다.
이제는 국민들도 가세하여 늘 서로 다투는 일상사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의견의 다양성이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어 그 조정을 이뤄내지 못하고 대립과 분열이 눈에 띄는 한국의 민주주의이다.
목숨을 걸고라도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집단만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이다.
정부는 정치의 대립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대립도 해결할 의지가 없으며, 방법도 찾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도 집권세력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결과론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국민을 선동하거나 계층이나 집단 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듯 느끼게 한다.

언론매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가 노동자나 못가진 자, 소외된 자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업이 노동자의 적이 되거나, 가진 자가 못가진 자의 적이 되는 환경을 해소해 내지 못하면 국가는 분열과 대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가 바른 기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부당하게 돈을 버는 사회구조를 개선해내지 못하고, 그저 손쉬운 세제정책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전략만을 구사한다.
과도하고 엄격한 징세와는 달리 그 사용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 이런 저런 수를 써가며 세금을 빼먹는 부조리한 자들이 방송에 적지 않게 보도되는데, 위정자들도 절박하지도 않고 검증되지도 않은 곳에 선정이라도 베풀듯 세금을 마구 뿌려댄다. 그런 것 치고는 국가기관들이 하는 일은 국민의 눈치 보기나 사익추구 정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탈세나 세금체납이 정말 나쁜 것이라면 국민의 세금을 잘못 쓰는 것도 같은 정도로 나쁜 것이어야 한다. 정부 예산낭비의 수많은 예를 본다면 납세의 불법을 나무랄 명분은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공권력의 위상은 추락하여 국민들의 갈등 해결에 나설 여력이 없어 보인다. 공권력이 권위를 가지고 국민의 불법과 기초질서 위반 등을 막아내야 하는데, 무슨 민원이다 사후 책임추궁이다 하며 불법행위자들의 눈치만 보고 있어 서부활극에서처럼 한국도 개인이 스스로를 지켜내고 분쟁해결에도 직접 나서야 하는 판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며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려는 사회로 진입하여 개인의 일탈도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를 감당해내야 하는 일선의 공권력은 소명의식도 없이 뒤탈 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한 업무태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책임은 다해내지 못하면서 부처 간 권한 싸움에는 민감한데, 우선 있는 권한이나 제대로 행사하여 국가의 공공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공권력이 국가의 법질서를 회복해내지 못하면 국민들은 매사 다퉈야 하는 일상 속에서 보내야 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많은 행위들이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공권력이 이를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개인 간에 어처구니 없는 분쟁이 많아져 한국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다툼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한국에서는 싸움이 능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국민들 간에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제도와 이를 집행해내는 공권력의 역할이 수행되어야 국민들의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다. 싸우거나 참거나 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를 그대로 두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는 구호는 허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