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물 관리 정책을 지향해온 인천시의 상수도 행정이 서구지역 붉은 수돗물(적수) 공급 사태로 '부실·늑장 대응'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시 산하 상수도사업본부는 사고 초기 적수 피해 민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탓에 신속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시는 이런 사태에 대비한 매뉴얼도 갖추지 못한데다 모든 대응을 본부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문가들은 "상수도혁신추진단을 꾸려 기존 물 관리 시스템을 전면 뜯어 고쳐야 할 때"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련기사 3면
박준하 행정부시장은 4일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일이 지난 지금까지 서구지역에서 적수가 발생하고 있다. 민관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보다 세밀한 수질 검사와 현장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적수 피해 신고가 접수된 5월30일 오후부터 상수도사업본부에선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가동해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가 이날 언론에 배포한 '비상근무 현황' 자료를 보면 상수도본부는 적수 민원이 발생한 지 이틀째인 5월31일부터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사고수습대책본부를 하루 늦게 꾸리는 등 늑장 대응을 했다는 의미다.
상수도본부 관계자는 "민원이 발생한 당일엔 현장 점검 선에서 일을 마친 게 사실"이라며 "이후 다음날인 5월31일부터 담당 부서인 급수부와 서부사업소 2곳만 대책본부를 꾸려 비상근무를 시작했고 1일부터 전체 사업소로 확대해 비상근무를 실시 중"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상수도본부는 5월31일 46명, 1일 104명, 2일 201명 등 뒤늦게 비상근무 인력을 배 이상 늘리는 뒷북 행정을 펼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는 서구지역 관할 공촌정수장의 물 공급처인 풍납취수장·성산가압장 전기 설비 법정 검사로, 서구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수계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기존 관로의 수압 변동으로 수도관 내부 침전물이 탈락해 이물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수도본부는 그동안 수계 전환 때 별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안내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적수 공급으로 지역 주민들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시와 상수도본부가 허둥지둥 거린 이유는 또 있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한 대응 매뉴얼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박 부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이와 같은 혼란과 불안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응 매뉴얼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곪아왔던 문제가 터졌다는 반응이다. 최계운 인천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에서 있어선 안 될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며 "이미 다른 지역들은 건강한 물 공급이란 콘셉트를 수립해 물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꿔 가고 있다. 인천도 이런 변화에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수도혁신추진단을 구성해 노후관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물 관리 조직을 완전히 바꾸는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박범준·임태환 기자 parkbj2@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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