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22명의 십대 소년들이 여름 캠프에 참여했다. 소년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상대방의 존재를 모른체 캠프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수영할 웅덩이를 찾아내고, 텐트를 치고, 음식을 준비하고, 보물찾기 같은 활동을 하면서 각 집단은 자발적으로 집단 내의 규칙과 위계질서를 정하고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한 팀은 자신들을 '짱'이라고 불렀고, 다른 팀은 '매'라고 불렀다.
각 집단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 캠프에 다른 팀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그러면서 두 팀은 영역 싸움에 들어갔다. 각자의 구역에 상대 팀이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농구, 줄다리기 같은 경기를 하면서 두 팀 간에 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첫 경기에서 진 '매'가 '짱'의 깃발을 불태웠고, 다음 날 '짱'도 상대팀의 기를 불태웠다.

그 다음에 '매'가 줄다리기 경기에서 이겼다. 발꿈치를 땅에 박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짱'은 그날 밤 상대팀의 오두막을 습격했다. 당연히 아침에 '매'도 '짱'의 오두막에 보복을 가했다. 최종적으로 '매'가 승리를 거두자 패배한 '짱'이 상대팀의 오두막을 습격하며 '매'가 승리의 대가로 받은 메달과 상품을 훔쳐 갔다. 그렇게 쌍방 간에 격렬한 공격과 보복이 오가며 두 집단 간에 적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두 집단 간에 화해를 조성하기 위해 캠프 측은 영화감상 같은 평화로운 활동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은 오히려 두 집단 간의 적대감을 표출하는 기회가 됐다. 두 집단은 식당에 따로 앉아 서로를 조롱하고 음식을 던짐으로써 평화로운 활동들은 결국 실패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은 두 팀이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다른 팀의 도움 없이 한 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캠프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가 고장 나서 1.6㎞의 수로를 함께 수색하고 고쳐야 했다. 또한 고장난 트럭이 빠져 두 팀이 함께 힘을 모아 트럭을 끌어 올려야 했다. 이런 공동 작업의 시간을 거치면서 두 팀은 천천히 조금씩 갈등을 이겨 나갔다.

이 고전적 실험은 오래 전 미국에서 실제로 행해진 사례이다. 이 실험 하나로 집단 간의 관계 형성과 변화에 대한 단정적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이 연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적대적인 집단들이 단순히 함께 자리를 한다는 사실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두 집단의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데 있어 공통된 목표 하에 함께 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대적인 집단들이 서로 많이 접촉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그것을 목격하지 않는가. 지금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과 화해의 만남들을 생각해보라. 점점 더 우리 편과 다른 편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 오래된 연구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요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뉘어 있다. 남자와 여자, 강남 사람과 아닌 사람, 스카이 대학을 나온 사람과 아닌 사람, 서울특별시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남에 의해 어떤 집단으로 분류되고 그 집단의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이분화를 분열기제라고 하는데 생애 초기에는 자연스러운 원초적 방어기제이다.
아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모순된 상태를 동시에 다룰 능력이 없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좋으면서 동시에 나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린 아이는 세상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이분화하는 것이다. 수많은 동화나 민담이나 전설이 왜 그리 하나같이 생모는 일찍 죽고, 사악한 계모가 등장하는 이야기겠는가.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모든 것을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 나누는 사고이다. 분열은 복잡한 경험들, 특히 혼란스럽고 위협적인 경험을 이해하는 강력하고 단순한 방법이다.

이미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좋은 편과 사악한 편이 싸우는 구도를 만들어 적대감을 키우는 것이 문제와 갈등이 많은 집단에서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주었다. 그런데 분열의 문제는 늘 왜곡을 포함하며 바로 그것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도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같이 간다. 분열된 자기를 가진 사람은 삶을 통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