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 노동자 후손들, 지역 주류사회로 발돋움
▲ 지난달 10일 만찬 행사에 참석한 인하대총동창회 임원진과 호놀룰루 한인사회 인사들이 인천-하와이의 결속을 다짐하며 '알로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놀룰루(하와이)=김형수 논설실장 khs@incheonilbo.com

 

▲ 호놀룰루 '인하공원' 명판 오른쪽 뒤편으로 인천시가 기증한 이민100주년 기념탑과 인하대의 교훈 '진' 조형물이 보인다. /호놀룰루(하와이)=김형수 논설실장 khs@incheonilbo.com

 

▲ 주호놀룰루총영사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첫 해외공관으로 설립돼 초창기 워싱턴 D.C.로 가는 중간 기착지 역할도 수행했다. /호놀룰루(하와이)=김형수 논설실장 khs@incheonilbo.com

 

▲ 이승만 박사가 설립한 와이알라에 알리이오라니 스쿨시대(1918-1921)의 한인기독학원. 왼쪽 네 번째 흰색 양복을 입은 사람이 교장 이 박사다. 1층은 교회, 2층은 교실, 3층은 여학생 기숙사로 사용됐다. /사진=크리스천 헤럴드 '태평양을 가로지른 무지개'


우남, 박용만 초청으로 하와이 입성'
한인중앙학원' 세워 교육사업 매진
3·4세대 하와이 각계각층서 맹활약
투표 참여율 저조 정치력 신장 한계


지난달 10일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키키리조트호텔 2층 서울정에는 '알로하' 인사가 넘쳤다. '허그'와 웃음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서로 오랜만의 만남인 듯싶었다.

"평일 한인동포 수십명이 한 자리에 모이기는 쉽지 않은데 오늘 각계각층에서 참석했다." 김영태 하와이주 한인회장의 손님맞이도 안부를 주고받는 등 시간이 길어졌다.

"이민 역사로 맺어진 인천과 하와이의 민간 교류를 잇는 인하대총동창회 임원진의 하와이 방문을 환영한다." 앤 고바야시 호놀룰루시의회 부의장은 이를 기념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증서를 한진우 인하대총동창회장에게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캐롤 후쿠나가 시의원, 콜린 하나부사 전 연방 하원의원 등도 참석했다.

 
이날 '하와이동포 초청 리셉션'은 창학의 뿌리를 찾아 나선 인하대총동창회 하와이 역사문화탐방 일정의 첫 공식행사로 70여명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인천은 2003년 이민 100주년을 계기로 하와이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었다. 인천미술협회는 지난 20여년 동안 '인천-하와이 국제미술교류전'을 통해 민간교류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와이 이민이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시점이지만 양 도시의 교류는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날 만찬은 하와이 한인사회가 바라보는 인천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서 기대를 모았다.
 
"사탕수수밭 노동이민 선조들의 역사적 의미가 하와이 교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지만 후대들의 한인 정체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태호 한인회 이사는 인천과 하와이의 교류가 각 분야에서 활성화 돼야 할 이유 중 하나라고 짚었다.
 
인천시의회가 2012년 11월 호놀룰루시의회와 우호교류협정을 맺고 시의원들의 교차 방문이 이루어졌다. '경제, 문화,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등 공동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의제를 추진하지는 못했다.
 
호놀룰루 시의원들의 몇 차례에 걸친 인천 방문은 인천개항장, 송도국제도시 일대와 인하대,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을 탐방하는 정도였다.
 
인하대총동창회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하와이 역사문화탐방 행사를 개최했다. 올해 이 행사를 재개했다.
 
이번 탐방단의 일행으로 참가한 안길원 무영씨엠건축사사무소 회장은 "인하대학을 설립한 우남 이승만 박사의 하와이 민족교육 발자취를 돌아보는 탐방행사는 후학육영의 총동창회 이념을 실천하고, 이민 역사로 맺어진 하와이와의 교류를 증진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호놀룰루 킹스트리트에는 '인하(인천-하와이)공원'이 조성됐다. 2011년 9월 '파와아 네이버후드 파크'가 명칭을 바꾸고 공원 관리가 한인사회로 넘어왔다.
 
이 공원에는 2008년 11월 인천시가 기증한 '별이 되다(Become a Star)' 조형물과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물'이 설치돼 있다. 또 하와이 이민 110주년을 기념해 2013년 인하대의 교훈 '진'(眞)을 형상화한 상징물이 나란히 섰다.
 
하와이는 인천에서 떠난 한인의 첫 이민 도착지이고 독립운동의 성지였다. 임시정부 재정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해 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가 큰 기업을 일구지 못한 이유도 독립자금 조달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라는 역사학자들의 평가가 뒤따를 정도다.
 
1913년 2월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한 박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로 건너온 이승만은 교육·언론·선교 사업에 매진했다. 이해 9월 이 박사는 재미 한인학교의 효시가 된 한인중앙학원을 세웠다. 1918년 한인기독학원으로 발전시켰고 1928년 폐교 이후 양로원, 고아 숙소 등으로 활용됐다. 이 부지는 1950년 매각됐다.
 
"우남 이승만 박사가 세운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의 매각대금이 인하대학 설립의 종잣돈이었다. 1921년 우남이 설립한 하와이 동지회도 1970년 동지회 건물을 매각한 대금의 반인 9만5000달러를 인하대 장학금으로 전달했었다. 이때는 한진재단이 인하대학을 인수한 시절이다"라고 에드워드 황 동지회장은 회상했다.
 
아만다 장 하와이한인문화회관(HKCC, Hawaii Korean Culture Center)건립추진위원장은 "지난해 HKCC 건립을 위해 하와이주정부가 100만달러를 지원했다. 앞으로 한인사회 세대를 통합하는 민족 정체성을 잇는 문화복지 센터로 역할을 조속히 정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후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문추위는 2015년 280만 달러를 들여 갈리히 밸리에 복합아파트를 구입하고 문화회관 건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지역은 1919년 이승만 박사가 한인기독학원을 운영한 지역이다.
 
하와이 한인사회는 150만명의 전체 인구 중 한인은 5만명에 불과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치, 법조, 교육계에 역량 있는 리더를 배출했다.
 
1958년 로버트 원배 장(이민2세) 하원의원을 비롯해 1964년 필립 민 하원의원, 이어 다나 이케다·다나 김 상원의원, 잭키 영 하원 부의장, 알렉스 샌티에고 하원의원 등이 활약했다.
 
1971년 허버트 최(한인2세)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연방 판사로 임명됐다. 2001년 아시아계 최초의 여성 교육감으로 임명된 패트리샤 리 하마모토도 순수 한인 3세다. 또 리 도나휴 호놀룰루시 경찰국장, 로날드 문 하와이주 대법원장 등이 하와이에서 성공한 한인들이다.
 
현재 해리 김 빅아일랜드(하와이섬) 카운티 시장과 법조계에 오아후 지역 로노 J 이 제10지방법원장, 크리스틴 유·게리 W. B 장 판사, 빅아일랜드 로버트 D.S 김 판사, 카우아이 조나단 J 전 판사 등이 한인계이다. 정치계에는 도나 모카도 김 상원의원, 실비아 장 룩·샤론 하 하원의원 등과 주 정부, 시정부에 근무하는 한인들도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기업인으로 성공한 인물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작고한 김창원(미국명 도널드 김) ㈜앰코(AMKORE A&E) 회장은 인천과 깊은 인연을 맺은 하와이 한인사회의 리더였다. 그는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총회장을 맡아 60만달러 상당의 사재를 기부하는 등 하와이 지역사회와 교육기관에 내놓은 기부금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하와이주립대학교(UH) 한국학연구소에도 150만달러 상당을 발전기금을 내놨다. UH 이사장과 동창회장을 역임했다. 국내에도 카이스트(KAIST)에 100만달러, 인하대에 20만달러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특히 그는 1967부터 3년간 하와이 동포들의 성원으로 창학한 인하공대의 설립 종자돈 기금관리위원이었다.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설립할 때도 중추적인 역할에 동참했다. 그의 부친은 인천출신으로 하와이 이민 1세대 사탕수수밭 노동자였으며, 모친은 사진신부였다.
 
하와이 재계를 주름잡는 기업인은 건설회사 Nan, Inc. 패트릭 신 대표, 주택개발사업 삼구퍼시픽LLC 티모시 이 대표, 부동산관리개발업체 아발론의 크리스틴 캠프를 손꼽는다.
 
참석자들은 "하와이 이민 선조들은 독립자금 조성에 매달려 기업을 일구고 물려줄 기반을 만들기보다 자녀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성공한 기업인들보다는 변호사, 의사, 문화예술계의 인재들을 더 많이 육성했다"는 시각이다.
 
김지준 부총영사는 "하와이가 자연환경은 좋지만 한인들은 문화, 경제 환경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관광분야도 성수기, 비수기 등 기복이 심하다. 과거에 비해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업가들은 많지 않다. 의사, 변호사 등 개인적인 활약은 우수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한인 1세대가 잘 정착해 2, 3세대들을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냈고, 지역사회에서 홀대받지 않는 우수한 민족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인 동포사회가 필리핀이나 일본 커뮤니티에 비해 할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별 성공도 의미 있지만 투표에 적극 참여해 정치력 신장을 통한 미국 주류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 미국 시민권자가 3만7000명가량 되지만 투표에 참여하는 인원은 2000명 정도이다. 적극 투표에 참여해 한인 정치인들을 다수 등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한인단체 간에는 갈등이 있다. 소수민족이 똘똘 뭉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만 박사가 강조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꼭 맞는다"고 표현했다.
 
호놀룰루 총영사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4월 해외에 개설한 최초의 재외공관 중 하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워싱턴 D.C.로 가기 위해 숙박, 비행기 연료 주입 등이 꼭 필요한 중간 기착지였다. 이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독립·교육운동에 헌신하고, 한인들도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간직한 공관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리셉션에 하와이 한인사회에서는 김영해 전 한인회장, 최재학 체육회장, 안도기 호놀룰루 하이비스커스 라이온스클럽 회장, 토니 리 와이파후 플랜테이션 한국관장, 임인옥 미술협회장, 김명희 하와이주립도서관 한국도서재단 대표, 정 캐빈·폴리 오하나퍼시픽뱅크(하와이 한인은행) 부은행장, 조관제 임팩칼리지 학장, 다니엘 장 동지회 총무, 박재원 민주평통 하와이협의회장, 변휘장 HKCC건립추진위원회 이사, 신광섭 라디오서울 진행자, 강대군 올림픽바디숍 대표, 하와이주한인회 임순만 고문·박종윤 이사장·백남철 부이사장·임안나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인하대총동창회 하와이 방문단은 김창균 인하대 공과대학장, 이해중 정구조안전진단 대표이사, 이용기 코반케미칼 대표이사, 권기진 명진팜 대표이사, 김현권 법무부 법사랑계양지구회장, 임동진 R&E홀딩스 대표, 신한용 신한물산 대표이사(개성공단기업협회장), 정경옥 지마이스 대표, 김천미 동창회 부장 등 27명이다.
 
인천과 하와이, 그리고 인하대는 하와이 이민역사와 이민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이어갈 글로벌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와이에 뿌렸던 교육 씨앗, 인천서 만개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 15만불, 인하대학 설립 종잣돈으로 쓰여

하와이에서 우남 이승만 박사가 운영한 한인기독학원(1918-1928)은 인하대학 설립의 모체다.
 
1952년 12월 6·25전쟁 중 부산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문교부장관(김법린)에게 동양의 MIT와 같은 공과대학 설립을 지시했다. 1953년 2월 정부기관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인하공과대학 '발기취지서'를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1953년 6월4일, 부산 피난정부청사에서 라디오를 통해 '인하대학설립에 관하여'라는 대통령 담화를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으로 ▲하와이와 국내 동포들이 합심하여 대학을 설립하는 의의를 지니고 있어서 국?공립보다는 사립으로 하고, ▲교명을 하와이 노동 이민의 출발지 인천과 목적지 하와이의 첫 음을 따 '인하'로 정하며, ▲대학 설립의 의의가 남북통일을 촉진하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을 밝혔다.
 
이 박사가 하와이 교포 2세 교육을 위해 설립·운영해왔던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 15만 달러를 기초로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 각계 국민성금, 정부보조금 100만 달러가 모였다. 또 인천시(시장 표양문)로부터 12만5173평의 교지를 기증받았다. 1954년 4월24일 개교했다.
 
1968년 한진그룹이 인수하면서 학교법인 인하학원으로 개편하고, 초대 이사장에 고 조중훈 회장이 취임했다. 최근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이사장에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선임했다.


/호놀룰루(하와이)=김형수 논설실장 kh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