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엔 비핵화조치 '틀'을 美엔 '명분' 만들어줘야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30일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진행된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통해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종전·평화구축 합의한 천재일우 기회
문제는 '전면 핵 포기' vs '선 제재완화'
北 마음 바꿔 체제안정 목표땐 장기화

정부 하루 빨리 적극적인 중재 나서야
경기도 평화중심지로서 협력·대응을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발표했다. '4.27 판문점 선언'이다. 양 정상은 이 선언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과 연내 종전선언 등을 천명했다.

이 선언으로 한반도에도 평화의 '훈풍'이 불었고,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판문점 선언으로 이뤄진 남북 간 '평화의 훈풍'마저 멈춰버린 상황이다.

판문점 선언 1년여가 지난 지금. 냉각기라 할 수 있는 현재의 북미관계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고, 더불어 평화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한반도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물었다.
이 전 장관은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인터뷰는 30일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진행됐다.

▲"냉전이었던 황무지에 평화라는 나무를 심는 것은 쉬운 일 아냐"

이종석 전 장관은 올해 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결과에 대해 이같은 소견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 것"이라면서 "남은 것은 북한과 미국의 본질적인 계산법의 문제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북미 간 종전선언 등 양 정상의 큰 틀에서의 합의는 이미 가닥을 잡았다. 다만, 서로의 마지막 세부적인 계산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빅딜'을 통한 사실상 전면적 핵 포기를 요구한 미국과, 선 제재완화를 요구한 북한의 입장이 부딪친 결과라는 얘기다.

이 전 장관은 "황무지를 개간하는데, 지금까지 잔돌들은 다 치웠다. 그런데 큰 바위덩어리가 황무지 한 가운데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큰 바위덩어리를 한 번에 옮길 수는 없다. 깨고, 부수고 해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쉽지 않은 일이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지난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이후 '제재 완화' 프레임에서 '체제 안정' 프레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북한의 속내는 사실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발전인데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의 약점이 '제재 완화'라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이용해 북한을 더 압박한 것"이라면서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결국 결렬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체제 안정' 프레임으로 바꾸려는 이유가 그들이 좋아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자신들의 약점을 치고 들어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북한이 '체제 안정' 프레임으로 간다면 북미 간, 남북 간 냉각기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제재 완화' 프레임으로 갈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의 프레임 변화는 결코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빨리 움직여야 한다. 다음 달 한미정상회담이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얘기는 하지만, 이것도 그 때까지 한반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라는 전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영변핵시설 포기를 포함한 더 폭넓은 비핵화 조치의 틀을 만들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자국 내에서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따른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진력해야 할 때다"

이 전 장관는 "가끔 '정말, 한반도에서 비핵화가 될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같이 조언한다고 말한다.
그는 "비핵화 실패 이후 새로운 낙관적인 후속 조치가 있을 경우에는 이 질문이 의미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지금은 '질문'보다는 우리 모두가 비핵화 협상 성공을 위해 진력을 다해야 할 때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잠시 냉각기일지라도 현재 한반도 국면은 비핵화 실현을 위한, 평화로 갈 수 있는 절대적인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4·27 남북 간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해 완전한 평화 구축에 대해 합의했다는 점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 기회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경기도의 역할에 대해 "경기도는 분단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도민들 삶의 질이 극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남북이 합의한 공동경제특구 등 경기도는 남북 간 한반도 비핵화,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다. 경기도는 남북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자체와 시민사회 등이 남북교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중앙정부의 대응력도 높아질 수 있다"면서 "경기도는 한반도 미래평화의 중심지역이다"고 강조했다.

/정재수 기자 jjs3885@incheonilbo.com

●이종석 전 장관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후 줄곧 남북관계를 연구해 왔다. 현재는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을 맡고 있으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과 사무처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1분과 정치행정 위원, 국방부·통일부 국방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이 전 장관은 올해 3월 출범한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남북평화정책자문기구에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남북평화정책자문기구는 경기도지사 직속으로 설치된 기구로, 정치·행정·경제·법률·언론·학계·민간사회단체 등 각계 전문가 32명으로 구성됐다. 한반도 평화기반 조성에 관한 정책과 의견 등을 도지사에게 직접 자문함으로써 평화협력정책·통일경제특구 추진 방향 등을 제시하는 한편 각종 사전조사나 연구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