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주도 의사 결정 '란츠게마인데' 방식 시행
▲ 29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영통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주민자치회 시범동 끝장토론에서 주민 150명이 '마을에 산재한 문제 해결방법', '필요한 우선사업' 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날 토론은 대표적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인 스위스의 '란츠게마인데'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주민들이 지역의 주요사안을 토론하고 직접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가장 필요한 권한·예산 "교육과 투명성" 1순위

공개토론·온라인투표 결과 지원정책 반영키로

29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청 대회의실. 원탁에 둘러앉은 주민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을을 바꾸자'는 주제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고, 상호 이견이 발생하면 논의로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모든 대화를 속기하기도 했다.

한바탕 토론이 끝나자 주민들은 '가장 필요한 사업' 등을 묻는 스마트폰 전자투표에 집중했다. 이내 신중하게 한 표 한 표를 선택해 제출했다.

수원 영통구가 각 마을에 산재한 문제 해소를 목표로 이른바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 방식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했다. 구 단위에서는 전례 없는 시도다.

구에 따르면 수원은 현재 '주민자치회 시범동'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주민단체에 '마을 만들기' 등 기능을 추가한 형태다.

주민들은 자치회를 통해 마을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 시에 제안하고, 지원받아 실현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민 관심은 부족한 상태다. 결국 공론화에 차질이 생겨 소수의 목소리만 반영될 수 있다. 또 참여 주민들이 너도나도 자기 사업만 고집하는 일도 있다.

이에 구가 떠올린 게 일명 '끝장토론'이다. 구는 우선 지난 3월 매탄·광교 주민을 대상으로 '마을의 문제점 및 개선사항'을 알려달라는 취지의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교육·문화·교통·복지·환경·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270여건의 의견이 나왔다. 이후 주민 100여명을 초대해 한 공간에서 토론하게 했다.

이날은 앞서 토론에서 도출된 50여개 사업 및 개선방안을 놓고 주민들이 다시 한 번 논의하고 평가하도록 했다. 매탄·광교 주민 100여명은 2시간 동안 토론과 투표를 거쳤다.

구는 현장에서 나온 주민 의견과 투표 결과를 향후 지원정책 시행의 척도로 삼는다. 구가 밟아온 일련의 과정은 란츠게마인데에 착안했다.

란츠게마인데는 스위스의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주민이 한군데 모여 이해관계와 연결된 의제를 도출하고 해결까지 꾀하는 민주주의 방식이다.

공개토론과 투표까지 있어 불필요한 찬·반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수원시 본청이 활용한 바 있으나 구청에서는 쓴 적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작은 행정구역 단위의 란츠게마인데가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저마다 특징과 요구가 다른 마을의 목소리를 보다 깊이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 과정에 동참한 김도영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자치 사업에 따르는 '사정이 다른 각 마을의 주요 사안', '우선순위' 등 고민을 이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며 "스위스와 달리 인구가 많고, 거주지 특성 등도 파악해야 해 투표는 거수가 아닌 온라인으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주민 의사결정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주민자치회 권한'에 '교육과 투명성 확보(33.7%)'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이어 '사업제안 등 자치업무(20.5%)', '동단위 자치계획 수립(12%)' 등 순이었다.

'가장 필요한 주민자치회 예산'은 '교육 및 투명 공개(40.3%)'가 많았다. '지자체 지원 강화(22.1%)', '동별 예산심의 권한 부여(16.9%)' 등이 뒤를 이었다. 영통구는 이 밖에 '가장 필요한 사업' 등 투표결과를 토대로 지원정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송영완 구청장은 "란츠게마인데 방식으로 주민 의견이 정책에 스며들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