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2016년 3월 인천에서 벌어진 일이다. 취객 난동 신고를 받고 한밤중에 경찰 2명이 출동했다. 취객 2명은 오히려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욕설을 퍼부었다. 급기야 테이저건을 꺼내 쐈지만 실패했다. 취객이 입은 옷이 너무 두꺼워 전기충격이 가해지지 않은 것이다. 한층 흥분된 취객이 경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자 테이저건이 땅에 떨어졌다. 옆에 있던 다른 취객이 잽싸게 테이저건을 집어들고는 경찰들을 공격해댔다. 결국 병력이 추가 투입되고서야 난동이 제압됐다. 경찰과 취객, 그 공수관계가 완전히 거꾸로 된 '사건'이었다. ▶지난 주 서울에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원들과 경찰 간에 충돌이 빚어졌다. '구조조정 분쇄' 등을 외치던 노조원들이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으로 진입하려 해서다. 노조원들은 이를 막는 경찰들을 끌어내 멱살을 잡고 폭행했다. 36명의 경찰들이 이나 손톱이 부러지고 손목 인대를 다치는 등의 부상을 당했다. 현장 사진을 보면 이 역시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모양새다. ▶90년대 중반 비엔나에서 겪은 일이다. 차를 몰고 가다 파란 불에서 노란 불로 바뀌는 걸 보고 교차로를 건넜더니 경찰이 막아섰다.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우선 우겨댔다. 분명히 파란 불 때 건넜다고. 별 대꾸도 없이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이제는 더 의기양양해졌다. 경찰서로 가서는 책임자급 경찰에게 "경찰이 거짓말을 한다"며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 무렵 한국에서 익히 하던 행동들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높아지자마자 그 경찰들이 권총 탄띠를 둘러매는 것이었다. 시커먼 권총과 탄창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경찰국가의 전통이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대림동 여경' 논란이 채 식지 않고 있다. 취객이 남성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뺨을 때린다. 또 다른 취객을 맡은 여경이 머뭇거리더니 주변 시민들에 도움을 청한다. "남자분 1명 나오세요. 빨리빨리 남자분 나오시라고요 빨리…" 시민들을 실망시킨 것은 맞다. 그런데 '여경 무용론' 등을 거쳐 성대결로까지 번졌다. 취업난 시대의 자리다툼인가. 여경 체력시험의 팔굽혀펴기는 무릎을 땅에 대고 한다는 사실까지 부각됐다. 실습 여경이 음란행위자를 쫓아가 순찰차를 불러 검거했다는 경찰의 홍보에도 '속보인다' 등의 반응이었다. 1차적 책임은 경찰에 있다. 경찰은 좀 강해야 제격이다. 새다리 같은 팔뚝으로는 오히려 제압당할 수 있다. 경찰의 체포술·호신술 교육이 예비군 훈련 수준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공권력 경시' 풍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