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올해 수원은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수원이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올해가 '새 수원 건설 23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이다. 정조는 뒤주에 갇혀 비운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을 옛 수원의 화산 아래로 옮겨 현륭원을 새롭게 조성했다. 이에 따라 수원읍치의 관공서와 일반 백성들의 민가들을 팔달산 아래로 옮겼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그 해 1789년 새로운 수원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정조는 화성을 건설했다.
230년 전 수원읍치 이전으로 시작된 새 수원 건설은 삼남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대 도회지로 성장하던 수원을 광주와 양주를 누르고 경기도의 수부도시가 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새 도시 수원은 이후 화성건설과 더불어 자급자족적인 농업도시와 수원 우시장으로 대표되는 상업도시로 거듭났다. 새 수원 건설 230주년을 뜻깊게 맞이해야 하는 이유이다.

수원은 올해 특례시 원년을 꿈꾸고 있다. 수원시는 인구 125만명으로 울산광역시보다 많다. 광역시의 기준을 넘은 지 오래됐다. 광역단위 행정을 전망하며 수원시는 도서관과 박물관 그리고 미술관 등의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해 왔다. 특히 21개의 공립도서관이 건립되어 운영되는 모범적인 도시로 자부하고 있다. 지역학으로서 수원학 자료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선경도서관을 비롯하여 미술을 특화한 북수원도서관, 다문화를 주제로 한 영통도서관, 디자인을 특화한 광교홍재도서관, 여행을 주제로 하는 한림도서관, 인권을 주제로 한 창룡도서관 등등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도시형 도서관의 특성을 살린 박물관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미술관도 아이파크미술관을 비롯하여 미술전시관 그리고 새로 컨벤션센터에 미술관을 새롭게 열었다. 박물관도 수원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수원박물관과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특화한 화성박물관, 그리고 광교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수집된 각종 자료를 중심으로 한 광교박물관이 건립 운영되고 있다.
수원은 기록의 도시이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의궤' 중에도 화성 축성과정에 대한 공사기록 보고서 '화성성역의궤'와 1796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등 8일간의 장엄한 수원행차를 한 행사기록 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있다. 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등재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 가운데 하나가 '화성성역의궤'의 존재였다. '화성성역의궤' 등이 만들어져 화성부(수원부)에 보내졌다. 그러나 현재 수원부 자체의 문서와 도서가 전승되지 않고 있다. 기록의 보관에 실패한 때문이다. 이유는 일제강점에 따른 수탈과 훼철, 그리고 6·25전쟁에 따른 화재와 인멸이라 할 수 있다.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기록과 기억의 전승으로 이루어지는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다. 기록은 다양한 기관과 주체에 의해 지속되지만 당대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기록의 보관과 관리는 또 다른 영역이다.

2000년 공공기록물관리법이 공포되면서 자치단체의 기록관 건립과 기록관리사 채용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그럼에도 일부 시·군에서는 기록관리사가 채용되지 않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시정하고자 2003년 경기기록문화포럼을 결성하고 진종설 경기도의장, 홍기헌 수원시의장, 안병우 한신대 교수, 이영학 한국외대 교수를 공동대표로 조직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기록관 설립과 기록관리사 채용을 독려했다.

그 결과 가평군을 비롯한 열악한 지역에서 기록관과 정규직 기록관리사가 채용되는 기현상을 가져왔다. 그나마 부천시, 남양주시, 화성시는 기록관리사가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그러나 경기도의 수부도시를 자랑하는 수원시의 경우 지난 10년간 기록관리사는 계약직으로 채용되어왔다. 그동안 4명이 계약직으로 채용되었지만 이직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바라봐야 했다.

수원시는 현재 15만권의 기록물을 시청 본관 지하 문서고에 보관하고 있다. 200평이 안되는 서고는 법정 규모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더욱이 175개 과에서 생산되는 문서를 전임계약직 1명이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왜 4명의 직원이 이직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수원시가 특례시 원년을 맞이하며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업 가운데 하나가 제대로 된 기록관의 건립이다. 기록관의 존재는 여타의 문화기반시설이나 행정기관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당대의 기록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여 후대에 전승해야 우리는 못난 조상을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