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말 속에 어떤 뜻과 기운을 담아 내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의미다. 말을 많이 하여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할 때 쓰이는 말이다.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가정과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꿀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고 들어왔다. 무의식중 내 뱉은 실언은 곧 화(禍)가 되어 되돌아온다. 특히 정치인의 실언은 자신의 정치 생명은 물론 정권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들의 실언 흑역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구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비하하는 '문빠' '달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문빠는 문 대통령을 뜻하는 '문'과 열렬한 지지자를 뜻하는 '빠'를 합친 말이다. 달창은 '달빛창녀단'의 준말로 극우 네티즌들이 문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달빛기사단'을 속되게 부르는 인터넷 은어로 여성비하의 의미도 담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정확한 의미와 유래를 몰랐다"며 즉시 사과했지만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민심을 거스르게 하는 현 정부 청와대 참모들의 실언도 잦았다.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은 올해 초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최고경영자) 조찬간담회'에서 "지금 50, 60대는할 일이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 가라"고 했다. 또 "젊은이들은 여기 앉아서 취직이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라. 아세안 가보면 '해피조선'"이라며 "국문과 졸업하면 취직 못한다. 그런 학생을 왕창 뽑아 태국 인도네시아의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 김 보좌관은 "동남아 너나 가라"는 여론의 비판속에 이틀 뒤 사임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9월 부동산 폭등과 관련,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도 거기(강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며 "급격하게 세금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남이니까 다 세금을 높여야 된다'는 방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제 정책의 사령탑이자 강남에 고가의 대형 아파트를 보유한 장 정책실장이 할 얘기는 아니라는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한번 입밖으로 뱉어진 말은 엎지른 물과 같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조심을 해도 의도치 않게 실언을 하게 된다. 경솔하게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숙성되지 못한 말은 침묵만 못하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