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 뽑는 비법, 며느리도 몰라요
▲ 경기도 평택 '서림제면'에서 최기원 장인이 건조 중인 국수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경기도 평택 통복전통시장 '서림제면' 전경.

 

제면소하던 외삼촌 돕다 뛰어들어
날씨·계절 따라 간하는 방식 달라
연구하다 버린 국수만 수십가마니
특유 구수한 맛·無 방부제 기술로
단골 자녀·손주까지 단골 만들어

면(麵) 요리는 계절 별미로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메뉴다.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거나 국수틀로 가늘게 빼내 삶아 만든 음식을 서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즐겨 먹고 있다. 국수를 만들어내는 '제면소'는 예전엔 지금의 편의점 만큼이나 동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제면소는 산업의 발달과 거대 자본에 밀려 어느 지역의 '국수 잘하는 맛집'인가 싶을 만큼 생소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전통 재래 제면 방식을 고집하며 한결같은 맛을 자랑하는 '제면(製麵)의 장인'이 있다. 경기도 평택에 소재한 '서림제면'의 주인장 최기원 장인을 소개한다.

#100년의 시간, 60년의 노하우

소면, 쫄면, 냉면, 당면, 메밀면 등 재료에 따라 굵기에 따라 종류 만해도 수 십 가지. 최기원 장인이 만들지 못하는 '면'은 없다. 대를 이어 제면을 해 온 최 장인은 '서림제면'의 수장이자 통복전통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서림제면은 이 자리에서만 벌써 60년째 면을 뽑고 있습니다. 외삼촌이 운영하던 제면소 일을 돕다가 1996년 결혼을 하면서 가게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서림제면은 100여년 전 통복 육교 부근에서 창업자 한봉진씨가 운영했었다. 이것을 최 장인의 외삼촌이 인수해 지금의 통복전통시장으로 자리를 옮겨오면서 오늘날 서림제면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60년째 제면소를 이어온 최 장인 가족의 경력에, 전 운영자의 경력까지 합하면 서림제면의 간판은 족히 100여년 동안 유지돼 온 셈이다.

"외삼촌께서 서림제면 창업자이신 한봉진씨의 제면소에서 일을 하다 제면소를 인수했기 때문에 그 기술을 전력 삼아 변함없는 국수의 맛을 지켜올 수 있었지요. 저 역시 전통적인 맛과 기술력을 지켜내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맛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험한다며 버린 국수만 수십 가마니는 될 겁니다."

면과 인연을 맺기 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최 장인은 외삼촌이 운영하던 제면소를 드나들며 간간히 일을 도왔었다. 잘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제면소 일에 뛰어들게 됐다.

"어깨 너머로 배워둔 기술을 막상 직접 해보려니 숱한 실패의 연속이었죠. 외삼촌 조차도 일급 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제면소 문이 닫힌 밤이 되면 연구와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지금은 수십 년간의 노하우가 더해져 훌륭한 품질을 보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며느리도 모르는 일급 비밀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 제면소가 1970~80년대에는 한창 부흥기를 이뤘다. 서림제면에서만 하루 20㎏ 상당의 밀가루 200포대가 생산될 만큼 국수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분식 정책 때문에 밀가루 소비가 많아진 것도 있지만 예전에는 무엇보다 결혼식이나 잔치가 있는 날이면 국수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죠. 지금은 혼례나 행사의 음식이 뷔페 형태로 바뀌다 보니 생산량이 줄어 제면소를 찾기는 더 어려워진 실정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서림제면은 오로지 재래 방식으로 국수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서림제면의 국수는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진 공장 국수보다 한참 구수한 맛을 낸다. 특히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아 신선하고 건강한 국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림제면의 수제 면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언정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우수한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저희 국수의 가장 큰 특징이 방부제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여타의 제면소에서는 면의 특성상 주변 온도나 환경에 예민하기 때문에 방부제가 필수처럼 들어가지만 서림제면에서는 특유의 기술력으로 결코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원료 선정에서부터 반죽, 추출, 건조를 거쳐 상품으로 내기까지 7일이 꼬박 걸리는 서림제면의 국수는 상당한 공을 들인다. 특히 국수 제조 과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까다로운 과정 중에 하나인 '염(면에 간을 하는 방식)'을 하는 기술력은 며느리도 모르는 서림제면만의 비법이다.

#손님도 대를 이어 찾는 국숫집

"그 날의 날씨에 따라, 혹은 계절에 따라 염을 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갈라지고 끊어지기 쉬운 게 면이다 보니 상당히 공을 들여야만 하는 과정이죠. 서림제면만의 염 노하우로 한결같은 품질을 지켜오게 됐습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청년이었던 단골 손님은 어느 덧 백발이 성성해진 노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서림제면의 국수만을 찾고 있다.
"초창기 통복시장에서 문을 열었을 때부터 찾아주신 손님들이 계시죠.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 되어 직접 구입하기 어려워지자 며느리 또 그 며느리의 며느리가 대를 이어 저희 서림제면을 찾아주고 계십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용이 편한 대형마트에서 국수를 판매하면서 문을 닫는 제면소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지만 최기원 장인은 꿈쩍하지 않는다. 한결같은 맛과 품질을 자랑하는 오랜 전통의 서림제면을 손님들도 대를 이어 찾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외삼촌이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서림제면을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간곡한 외삼촌의 유언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국수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지요."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사진제공=서림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