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인천과 경기도에 본교를 둔 2년제이상 대학은 90개다. 대학, 전문대학, 대학원대학교 형태로 인천에 10개 대학, 경기도에 80개 대학이 있다. 전국 417개 대학의 21.6%가 경·인 지역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일제강점기 전문학교 수준의 학교들이 미 군정기에 인가를 받아 국·공립 또는 사립대학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1924년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이 해방 1년 후 국립 서울대학교로 설립(1946. 8. 22)됐다. 1905년 설립된 보성전문학교는 1946년 고려대학교, 1886년 이화학당이 이화여자전문학교를 거쳐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1885년 세워진 광혜원을 전신으로 연희전문학교가 1946년 연희대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로 발전했다. 1947년 당시 인가받은 대학은 국·공립 8개, 사립 12개로 20개 대학이 명맥을 유지했다. ▶해방 후 미 군정기를 거친 대학과는 달리 6·25전쟁 중에 태동한 대학이 인천의 인하대학교이다. 1954년 개교 당시부터 인하공대는 서울공대, 한양공대와 더불어 한국의 3대 공대로 명성을 날렸다. 인하대는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이 피난지 부산에서 대학설립을 지시하면서 탄생했다.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첫 이민 하와이동포들의 정성도 담겨 있다. 우남이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민족 교육운동에 헌신하며 운영한 '한인기독학원'을 처분한 15만달러가 인하공대 설립의 종자돈이 됐기 때문이다. ▶1952년 12월 6·25전쟁 중 부산에서 이 대통령은 김법린(金法麟) 문교부장관에게 동양의 MIT와 같은 공과대학 설립을 지시했다. 1953년 6월4일, 부산 피난정부청사에서 라디오를 통해 '인하대학 설립에 관하여'라는 대통령 담화를 발표했다. 1953년 2월 정부기관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인하공과대학 '발기취지서'가 작성됐다. 하와이 이민 선조들이 마지막으로 밟았던 인천, 이곳에 대학을 설립하기로 하고 당시 표양문(表良文) 인천시장이 부지를 제공했다. 인천과 하와이의 첫 음을 따 '인하'라는 교명을 지었다. ▶인하대학교는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이었던 하와이 동포와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설립될 수 없었던 대학인 셈이다. 1902년 12월 제물포항에서 겐카이마루 호에 몸을 실었던 하와이 이민은 인천 내리교회 교인을 포함해 인천출신이 84%를 차지했다. 인하대총동창회는 내일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인하대 창학 뿌리가 된 하와이로 이민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인천과 하와이, 인하대 등이 간직한 하와이 이민 역사를 소중히 이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