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가수 이미자 씨가 노래 인생 60년을 기리는 무대를 연다고 한다. 내달 8∼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이다. 기나긴 노래 인생을 돌아보며 그가 회고했다. "중동의 사막, 월남의 밀림, 독일 지하 탄광에서 땀과 먼지로 범벅된 얼굴들을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한국 현대사의 힘겨웠던 시절과 쭉 함께 했다는 얘기다. 지난주에는 인천 부평에서 '배호, 스물아홉 청춘'이라는 음악회도 열렸다. 불현듯 농업사회를 채 벗어나지 못했던 1960년대 기억의 저장소들이 활짝 열린 느낌이었다.
▶'섬마을 선생님'은 '동백 아가씨' 등과 함께 이미자 대표 히트곡으로 꼽힌다. 1965년 라디오 전파를 탔던 동명의 연속극 주제가였다. 1970년대가 온 마을에 TV가 한 두 대였다면, 1960년대는 라디오가 한 두 대이던 시절이다. 저녁을 먹고 마실을 나가 온 동네사람들이 라디오 연속극 '섬마을 선생님'을 함께 들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여세를 몰아 1967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이제는 흘러간 스타들인 오영일, 문희, 이낙훈, 김희갑씨 등이 출연했다.
▶'황포돗대'도 그 무렵 이미자 씨의 히트곡이다. '마즈막 석양빛을/기폭에 걸고/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노래의 도입부 만으로도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진다. 어릴 적 고향 어촌에는 동력선이라고는 한 척도 없었다. 노를 젓거나 돛을 펼쳐 고기잡이를 나갔다. 돛 폭은 모두 황토를 개어 물들인 황포였다. 바닷가 조무래기들이 의미도 모른 채 그 '황포돗대'를 합창하곤 했다. 언젠가 남해 소매물도를 갔을 때 폐교된 분교를 둘러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섬마을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미자의 노래는 우리들 뇌리 저 깊은 곳에 저장돼 있는 것 같다.
▶'섬마을 선생님'은 인천의 노래, 영화이기도 하다. 50여 년 전 옹진군 대이작도에서 영화 '섬마을 선생님'이 촬영됐다. 영화 속 엑스트라들도 섬 주민들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섬마을 선생님이 근무하던 계남분교는 관광명소가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안산 대부도와 옹진군 소야도까지 '섬마을 선생님' 원조 공방에 나섰다고 한다. 소야도는 나루터, 배 등 이 영화의 절반이 소야도를 배경으로 한 장면이라는 것이다. 대부도는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등의 가사와 이야기 전개에 비춰 볼 때 이곳 대남학교가 딱 맞다는 주장이다. 굳이 진위를 가릴 것도 없다. 뜨거운 고향 사랑이거나 이미자 노래 사랑에 다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