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행정안전부는 지난 1월부터 약 4만5000명에 이르는 지방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한다고 지난 2017년 10월 발표했다. 반 분권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못해 지방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실패했다. 지난 4월 강원도 산불을 계기로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관련 법률개정을 두고 지방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대해 논란이 심하다.
이미 1990년 지방자치의 부활을 앞두고 소방사무를 누가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국책연구기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이승종 박사(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관련연구를 수행했다. 심도 있는 연구 결과, 주민에 가까운 시·군·자치구가 소방사무를 담당하여야 하고, 소방공무원도 관할지역의 지방 공무원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현장성이 강한 소방사무의 성격상 신속한 대처와 주민협력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방관들의 적극적인 로비로 소방사무는 시·도 사무로 되고, 소방공무원은 시·도 지방공무원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소방의 핵심은 화재의 예방과 조기 진화다. 불이 나지 않도록 지방소방관은 물론 전체 지방공무원이 서로 협력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체 주민이 화재안전망을 구축하고 신속한 대처를 위해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소방은 건축이나 영업허가뿐만 아니라 도시계획, 산림관리 등과 같이 다른 지방행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재예방과 조기진화는 일차적으로 현장 행정의 최전방에 있는 시·군·자치구가 대응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화재 위험이 있는 현장에서 주민과 공무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신속하게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의 소방사무는 구태여 고가장비가 아니라도 일반적인 소방기구로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소방을 담당하는 공무원도 당연히 시·군·자치구 소속이어야 한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화재의 신속한 진압에 실패해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경우에 비로소 특수한 장비와 대규모 진압 인력을 갖춘 시·도의 개입이 필요하게 된다. 시·도도 감당할 수 없을 때 국가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는 화재를 키워서 시·도나 국가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즉 시·도나 국가는 시·군·자치구가 대처할 수 없을 경우만 보충적으로 소방사무를 담당해야 한다.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와 장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지방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소방관의 처우와 장비의 개선은 국가가 지방정부에게 재정을 지원하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소방관의 처우와 장비가 낙후된 것은 국가의 편파적 재정정책으로 지방의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을 확충하면 소방관이나 소방장비의 지역격차 문제도 자연적으로 해결된다.

국가가 지방소방관의 처우와 장비를 개선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없다면, 지방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
지방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경우에 소방 지휘 체계의 혼란과 화재 예방과 조기 진압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온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삽으로도 막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소방사무와 관련된 지방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국가직 소방관과 일반 지방공무원 간의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 더구나 국가직 전환은 소방문제를 주민의 문제가 아니라는 국가사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소방사무에 주민들이 참여와 책임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발등에 불이 나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끄기보다는 국가가 와서 꺼 주기를 요구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생하는 소방관을 예우하기 위해서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발상이 나왔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지방직을 국가직보다 천하고 격이 낮아 부끄럽게 여기는 생각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주민복리를 위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헌신하는 40만 지방공무원을 욕보이는 결과가 된다.
지방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정책은 지금이라도 철회돼야 한다. 대신 국가는 지방소방관의 처우와 소방장비를 개선하기 위해 지방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순리다. 차제에 시·도의 소방사무를 시·군·자치구의 사무로 재배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