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망원경의 성능은 렌즈의 크기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 렌즈가 클수록 맺히는 상의 선명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관측하고자 하는 물체가 작고 멀수록 더 큰 렌즈를 가진 망원경이 필요하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한 20세기 최고의 천문학자 허블의 업적도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망원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허블이 사용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윌슨 산의 후커 망원경은 반사거울의 지름이 2.5m로 평생을 망원경 제작에 매달렸던 해일이 후커와 카네기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낸 역작이다. 만약 지구만한 렌즈가 있어야만 볼 수 있는 물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최근에 발표된 블랙홀 관측에 대한 이야기이다.

블랙홀은 물질이 엄청나게 높은 밀도로 압축되어 있는 천체로서, 지구를 반지름 1cm 이하의 공으로 수축시킨 정도의 밀도를 가지고 있다.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블랙홀 근처의 일정 거리에서,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선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이번 관측으로 '사건의 지평선' 주위에 생기는 밝은 고리의 형태를 밝혀냈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M87 은하의 중심에 있다. 다른 블랙홀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규모로서, 질량이 태양의 65억배 정도이고 크기는 우리 태양계와 견줄 만하다. 하지만 이 블랙홀은 우리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져있기에 관측을 위해서는 지구만한 크기의 망원경이 필요하다. 비유를 들자면, 달 표면 위에 놓여있는 사과를 지구에서 관측하는 정도이다.

이번 관측을 위해 100개가 넘는 기관에서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많은 사람들의 집단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중심에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학의 팔케 교수가 있다. 팔케 교수가 이번 관측의 가능성을 처음 생각한 것은 1993년이지만, 다른 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10년, 관측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또 다시 10년이 걸렸다. 2006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가 드디어 결성됐다. 지구만한 크기의 망원경은, 남북으로는 남극으로부터 미국 애리조나까지, 동서로는 스페인의 시에라네바다에서 미국 하와이까지, 전 세계 6군데 관측소의 8개 전파망원경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실현됐다.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이 망원경들은 초정밀 원자시계로 시간을 맞춘 뒤 동시에 같은 점을 향해, 2017년 처음으로 블랙홀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팔케 교수의 꿈이 20년 넘어서 마침내 실현됐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전 세계의 망원경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서로 경쟁하던 여러 나라 천문학자들이 협력해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인류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2013년 유럽 연구위원회는 팔케 교수에게 약 2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였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참여 국가들도 400억원이상의 연구비를 보탰다.

연구 결과 발표도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논문 출판 시기에 맞춰서 벨기에, 미국, 칠레, 일본, 중국, 타이완 6개국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이 이루어졌고,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됐다. 2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있는 상황에서 블랙홀 사진의 사전 유출을 막는 일도 쉽지 않았다. 팔케 교수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 집행기관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기자회견 전날 그는 일찌감치 브뤼셀로 가서 다른 사람들과 리허설을 하면서, 기자회견 때 나올 수 있는 예상 질문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 중에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이번 연구가 납세자들에게 무엇을 돌려주는지에 대한 예상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기자회견 후 기자들은 팔케 교수에게 악수를 청하였으며, 이는 이번 연구를 통하여 인류가 과학에서 또 한 발자국의 전진을 이루어냈음에 대한 찬사와 성원이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는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그린란드와 프랑스 알프스의 전파망원경을 더하고,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 전파망원경을 이전 설치하면 선명도가 더 높은 관측이 가능해진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나 블랙홀의 관측이 인류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거대 기초과학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