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10㎡ 남짓한 가게 가운데 몇 개 안되는 식탁과 한명이라도 더 앉을 수 있도록 사방 벽을 따라 이어진 선반과 의자가 놓인 분식집. 가게 밖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레코드 판매점의 음악소리. 서너 집 건너 하나씩 있는 옷가게와 액세서리 판매점. 1970년대 인천 중구의 동인천지하상가 모습이다. 어두침침한 조명. 음식냄새와 탁한 공기. 먼지가 난다고 가게에서 물을 뿌려 바닥은 항상 축축했다. 철로 변 지하상가는 전철이 지나갈 때면 큰 진동으로 천정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항상 사람으로 넘쳐났다. 가만 있어도 인파에 밀려 갈 정도였다. 마땅히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1883년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인천에는 우리나라 최초가 많다.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부터 시작해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과 외국인 마을인 차이나타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하상가도 그 중에 하나다. 1963년 인천 중구 인현동 동인천역 광장에서 북쪽 중앙시장으로 이어지게 뚫린 일명 굴다리. 처음에는 지하도만 만들어졌다가 나중에 상가들이 들어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상가다. 1972년 동인천역 광장에서 남쪽으로 상가들이 양쪽으로 줄지어선 지하도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지하상가 모습이 갖춰졌다.

▶인천에는 최초의 지하상가인 동인천을 비롯, 부평 등 모두 15곳(지난해 말 기준) 의 지하상가가 있다. 입주 점포만도 3500여개에 달한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부평지하상가는 점포 수만 1000여개로 단일 규모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사방팔방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상가 골목은 몇번을 가도 헷갈려 길을 잃기 일쑤다. 지하상가는 인천의 자랑거리가 됐다.

▶인천지역 지하상가 상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인천시가 지난 2002년 제정한 지하상가 임차권의 전대 허용 등을 담은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 조례'가 상위법인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위반된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조례 개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지하상가 임차권을 양도하거나 전대하지 못하게 하고 공개입찰로 상가 임차인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상인들은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한 논의라도 해보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5만여 영세상인과 가족들의 생계와 재산권이 걸린 만큼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법에 어긋나지 않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위민(爲民)이다.

/홍재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