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는 저술 이룬 때라 널리 알려진 '다산'
그의 뜻 알아줄 후학 기다린 시절엔 '사암'
▲ 강진 다산초당 건물에서 동쪽으로 연못을 지나 있는 '다산동암((茶山東菴)' 현판.

 

선생은 다산초암(茶山草庵), 다산동암(茶山東菴), 다산정사(茶山精舍), 다산서각(茶山書閣), 다산서옥(茶山書屋), 다산(茶山), 다산선생(茶山先生)이라 칭하였다. 선생의 허다한 저작이 모두 이 다산 시절 이루어졌다. 선생의 호로 다산이 널리 알려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명에서 온 차나무가 많은 산 '다산(茶山)'이지만 이를 거꾸로 하면 '산다(山茶)'가 된다. 선생은 특히 이 시절 차를 애호하였지만 산다도 많이 재배하였다. 선생은 <아언각비> '산다(山茶)'에서 "산다는 남방의 아름다운 나무이다. … 내가 강진 다산에 있을 때 산다를 많이 재배하였다(山茶者 南方之嘉木也 … 余在康津 於茶山之中 多栽山茶)"라며, 산다를 우리말로 동백, 춘백이라 부른다며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선생은 이 산다를 좋아하여 <다산화사(茶山花史) 20수>를 짓기도 했다.

동백(산다) 잎이 잇닿아 푸른 숲을 이뤘는데 油茶接葉翠成林
무소 갑옷처럼 단단하고 모 난 잎 속에 학 머리처럼 붉은 꽃 무성하네 犀甲稜中鶴頂深
봄바람 부니 눈에 꽃이 가득히 들어오고 只爲春風花滿眼
뜰 한 쪽에서 피거나 지거나라네 任他開落小庭陰

산다 꽃은 학 머리처럼 붉다. 그 잎은 단단하고 뾰족하며 차 잎과 비슷하여 음료로도 쓸 수 있기 때문에 차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다산'을 뒤집으면 '산다'이니, '다산서 산다'이다. 이래저래 선생의 삶을 담아낸 호임을 알 수 있다.

'철마산 나무꾼'이란 철마산초(鐵馬山樵), 혹은 철마산인은 선생의 향리에 있는 산 이름에서 따왔다. <아언각비서>에 '기묘년 겨울 철마산초 서'라 하였다. 이 해가 선생 나이 58세인 1819년으로 귀향에서 돌아 온 다음 해이다. 자하산방, 혹은 자하산인은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에 쓴 호이다. 이 책은 선생이 강진에 있을 때 초의선사의 청에 의해 삼국시대 이후 우리 불교 역사와 고승들의 전기를 엮은 책이다.

사의재는 강진 유배시절 거처하던 당호이다. 선생은 <사의재기(四宜齋記)>에 이렇게 써 놓았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이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 한다. 마땅하다[宜]라는 것은 의롭다[義]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나이 많아짐을 생각해보니 뜻한 바 학업이 무너져 버린 게 슬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때가 1803년 12월10일이었다. 귀양 온지 3년째, 42세인 선생은 흔들리는 마음을 저렇게 다잡았다.
사암(俟菴)은 선생이 마지막까지 아낀 호였다. 선생은 이미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조선의 병도 깊어졌다. 선생은 <상중씨(上仲氏)>에서 "천하가 이미 썩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天下腐已久)",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 어찌 이 정도까지 심하기야 하겠습니까?(生民之塗炭 豈若是之甚乎)"라고 조선을 진단했다. 나이는 들고 자신이 남긴 서적이나마 알아줄 후학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선생의 호 '기다리는 집'이란 뜻의 '사암'은 이러한 의미이리라. 그렇다면 지금이 선생이 기다리던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1935년 8월6일, 식민지하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김태준 선생의 <진정한 정다산 연구의 길 : 아울러 다산론에 나타난 속학적 견해를 비판함>(10)의 마지막 구절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벌써 한 시대가 유전하여 왔다. 이제는 다산이 꿈꾸고 그리든 그 시대도 세계역사에서 폐막하려하거늘 아직도 다산몽(茶山夢)에서 깨지 못한 완고(頑固, 고루한 사람)들이 다산을 그대로 부흥하고자 하니 어이 하리오. 우리는 단순한 고전 부흥에서 마땅히 일보 전진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저 김태준 선생이 지적하는 어리석은 '완고'는 아닌지 곰곰 생각하며 다산의 글을 마친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