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아 문학평론가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환상밖에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의지와 이상 속에 자라며 흔들리듯
그대의 사랑도 믿음도 나의 사기도 사기의 확실함도
확실한 그만큼 확실하지 않고
근사한 풀밭에는 잡초가 자란다.

확실하지 않음이나 사랑하는 게 어떤가.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詩에는
남아있는 우리의 生밖에.
남아있는 우리의 生은 우리와 늘 만난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믿고 싶지 않겠지만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오규원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만이 있을 뿐. 근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환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 아무것도 없음이 진정한 시의 힘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문학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 문학의 의미는 거대한 것에 있지 않다. 거대한 의미가 없더라도 그것을 안고 그저 나아가는 과정 속에 의미가 있다는 믿음, 그것에 문학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블량쇼는 "문학이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문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아무것도 아닌 문학의 속성이 순수한 상태로 분리된다면 그것은 문학의 특이하고 경이로운 힘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시의 힘, 문학의 진정한 힘은 그 아무것도 없음에서 비롯된다. 그렇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 그럼에도 우리가 늘 시를 만나는 이유. 시가 곧 근사하지 않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