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부모·자녀들에게 가족의 울림 전하고 싶어"
▲ 박영신 교수는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통해 한국의 아버지들의 정서가 세계인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지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국제도서박람회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선정이 되어 전시됐습니다. 이 책은 국제도서박람회가 끝나고 독일 베를린대학교에 기증해서 상설 전시될 예정이므로, 한국문화에 관심있는 유럽인들에게 좋은 참고문헌이 될 것으로 보여 더욱 의미있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대구로 피난 와 가정을 일구고 북에 두고 온 부모의 당부대로 꿋꿋이 선(善)을 실천하며 살아온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 박정헌(1914~2010)의 이야기다.

박영신 인하대 교육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2013년 한국어 판을 출간한 이 책이 2015년 중국어판으로 출간된 데 이어 올 1월 영문판 이 나오고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 '아마존'에도 올랐다. 시각장애인용 점자책도 지난 2016년 출간했다.

"제가 이 책의 중국어판을 내게 된 이유는 유교 문화권인 중국인들이 개인은 물론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그리고 부모님을 둔 중국의 자녀들에게 가족이라는 진정한 울림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영어판은 한국의 문화와 풍토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영어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교재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자녀교육지침서로, 각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재로, 우리나라의 교육적 성취의 근원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교훈과 지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도서전시회와 베를린대학교 기증에 이어 박 교수는 제자 8명과 함께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서재필재단에 이 책의 영문판을 기증할 예정이다.

서재필재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및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미국의 3·1운동인 '제1차 한인회의' 재현 행사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한다.

한국 교포 1000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행사는 100년전 3·1운동이 일어나자 서재필, 이승만 등 150여명이 모여 한국 독립을 선언한 '제1차 한인회의'의 역사적 의미를 재현하기 위해 역사강연, 평화음악회, 시가행진 등을 펼칠 예정이다.

이 책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줬던 이야기 속에는 많은 사연과, 지혜와, 경험이 들어있다. 그래서 각 단락이 단촐하게 부녀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박 교수는 아버지와 딸이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깨달았던 이야기속의 지혜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의 온도를 따스하게 지펴주기를 기대한다.

"2010년 돌아가신 아버지의 3년 상을 치르고 평범한 농부의 딸이 평생 아버지로부터 보고, 듣고, 감동했던 이야기들을 모아 엮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가난과 설움을 견뎌내고, 전쟁통에 숱한 고비를 넘기고, 맨손으로 농사지어 자식들을 공부시킨 아버지는 정직하게 살기가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생전에 딸과 나눈 얘기 속에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일본 순사들에게 잡힌 사람들의 상투를 끈으로 묶어 연결한 채 질질 끌려가며 칼에 찔려 죽어간 사람들을 숨어 지켜보았던 어린시절, 피란 내려올 때는 대동강 다리 쇠난간을 잡았다 놓으면 추운 날씨에 손바닥 살가죽이 쩍쩍 붙어 피를 흘렸던 일, 대구역에서 빈박스를 깔고 자며 지게 일을 하던 일들을 삶의 끝자락에서 그저 한바탕 꿈으로 여긴다.

하지만 격동의 시기에 아버지가 걸어온 길은 근면과 검소, 성실과 절제, 나눔과 선행, 인내와 의지, 보은과 사회환원 등 반듯하고 정갈하다. 아버지가 들려준 '산 돈과 죽은 돈', '맛과 멋', '쥐와 장독' 얘기 등은 우화처럼 쉽지만 온몸으로 본보기를 보였던 아버지의 삶의 깊은 교훈이 담겨 있는 '한국의 탈무드'와 같은 책이다.

"소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읽으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매일 동네 뒷산에 올라 많은 생각을 했다.(중략) 단상에 올라가서, 일본인 선생님께서 다 써주신 정해진 답사 대신에 교탁을 주먹으로 치며 후배들을 향해, '인간답게 살아라!'를 크게 외친 뒤에 '조선만세! 조선만세! 조선만세!' 만세삼창을 했다. 엄숙하던 졸업식장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다. 극도로 분노한 일본 순사들이 앞으로 뛰어나와, 그대로 질질 끌어갔다.(중략) 학적부에는 품행이 최하인 '병(丙)'으로 적혔다."('만세 삼창' 231~232 쪽)

아버지의 '만세 삼창' 일화는 일제의 신사참배반대운동으로 유명한 평양 산정현교회를 다니면서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회고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05년부터 아버지의 뜻을 기려 아시아사회심리학회에서 '박정헌 소장학자상'을 제정, 연구업적이 우수한 학자들에게 시상해오고 있다. 이듬해부터 어머니 이름으로 '정태곤 소장학자상' 등 국제장학금과 함께 국내학자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 및 사회심리학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의 우수논문상 등을 만들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1993년부터 인하대에 재직하고 있는 박 교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한국인의 부모자녀관계>와 <한국의 청소년문화와 부모자녀관계> 등 30여권의 학술저서와 번역서 5권, 한국연구재단의 공인 논문 138편을 출간했다.

특히 아버지를 모델로 평범한 한국의 부모자녀관계에 천착해오며 한국 부모들의 원형을 찾아내고 서양이 아닌, 한국의 위대한 토착심리를 탐구해왔다.

"제가 몇십년 동안 '한국인의 부모자녀관계'에 대해 과학적 학문으로 검증하고 연구해오며 학술적으로 접근해 왔지만 아버지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더욱 진한 감동임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처럼 보통사람들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쉽게 읽혀질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 책은 정년을 앞두고 올 하반기 마지막 안식년을 맞아 펴낼 계획입니다."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