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십만~백여만원 탕진
"올 때마다 돈 잃는데 못끊어"
꽝베팅에 고성·욕설 쏟아내
현금인출기 앞 돈찾기 '북적'

한 숨을 내쉬는 사람 여럿이 눈에 띄었다.

표정은 절박했고, 안절부절 못하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3일 하남 미사리 경정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이다. 이곳은 정부에서 인정한 합법 도박장이다.

이날 오후 1시 경정경기장.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이 붉은색 책자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선수 입상 경력과 경정보트 엔진 상태를 분석한 일명 '족보'다.

취재 중 만난 한 남성은 "경기 정보가 상세히 나온 족보 없이 돈 따기 어렵다"며 "완벽히 맞출 수 없지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장 판매부스에서 3000원에 팔지만 밖에서 1500원에 살 수 있다"며 귀띔했다.

경기 시작 5분전. 수십 분간 족보 분석을 하던 남성이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매표소로 향한 이 남성은 주머니에서 5만원권 수십장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총 60만원을 배팅했다.

규정상 한 경기 배팅금액이 100원에서 10만원으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10만원 이상 배팅하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장 한 안내원은 "편법을 써 한도 금액 이상으로 도박을 하는 이들도 많다"며 "경고 이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고요한 경기장은 경기시작과 함께 사람들의 고성으로 뒤덮였다. "에잇 XX. 돈 다 잃었네. 3번 XXX"
국방색 모자를 꾹 눌러쓴 한 노인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유를 물었다. "오늘 120만원이나 잃었어. 공사장 다니며 모은 돈인데 허탈하네."

연거푸 담배를 피우던 노인은 착잡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올때마다 돈을 잃는데 경기장을 계속 찾는 내가 한심스러워 화가 난다"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

비슷한 시각 경기를 관람하던 A(60·남성)씨는 "경기결과를 잘 맞췄냐"는 기자의 질문에 "따긴 뭘 따, 이제 시작인데. 더 해봐야 아는 거지 뭐. 나 오늘 한탕하려고 아침부터 와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정장에 마련된 현금인출기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게는 50만원 이상 찾는 이도 있었다.

한 남성은 '잔액부족'이라는 문구가 뜨자 화가 난 듯 현금인출기를 발로 찼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모니터링 요원들이 폐쇄회로(CC)TV로 편법을 쓰는 이용자들을 색출해 주의를 주고 있다"며 "합법스포츠 도박이 어두운 면도 있지만, 매출액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경정경기장을 찾은 방문객은 모두 24만9231명으로, 발생한 수익금은 6210억에 달한다.

/이경훈 기자·명종원 인턴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