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꾸리는 일, 이 땅의 주인인 도민과 '함께'
▲ 최순영 경기도민관협치위원회 부위원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YH 노조 대표로 여성노동운동 이끌다 수감 … 풀려난 뒤 '복지·진보정치' 관심
주민들과 의정 감시단체 만들고 … 도교육청 감사관으로 비리 찾아
"공무원·도민들 역량 강화 필요"



협치(協治, Collaborative Governance)가 우리 사회의 정치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경기도도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 이후 지난 1월29일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 시민의 몫에는 최순영(66)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부위원장은 이화영 평화부지사와 공동이고 위원장은 이 지사여서 사실상 민관협치위를 이끈다. 게다가 최 부위원장이 운영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치열한 40년의 밑바탕 '함께 사는 삶'

강원도 강릉에서 17살 때 돈 벌러 상경했던 최 부원장은 와이에치(YH) 노조 대표로 해고와 구속, 그리고 지역 여성노동운동에 이어 풀뿌리 민주정치와 진보정치, 민관협치까지 40여년을 달려왔다. 세월의 무게만큼 삶 또한 치열했다. 그는 "나를 지탱해준 것은 함께 사는 삶이었다"고 말한다.

'최순영'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79년 이른바 'YH사건'이었다. 그해 8월9일 회사측이 일방 폐업하자 186명의 와이에치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야당인 신민당사를 점거했다.
그는 당시 와이에치무역의 노조 지부장이었다. 스물여섯살의 그는 자신을 '언니'라 부르던 여성 노동자들의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눈 영원한 노동운동의 '언니'였다. 박정희 정권이 1000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면서 여성 노동자 100여명이 다치고 노조 대의원 김경숙씨가 숨졌다. 무자비한 탄압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졌고 철옹성 같던 유신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

"1970년 초 상경해서 첫 직장이 가발공장 와이에치무역이였어요. 공장에서 모범생이었고 기술도 좋아서 나중에 하청공장을 운영하면 돈도 벌 수 있겠다고 했는데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법이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란 사실을 알게 됐죠."

노조 결성에 뛰어들어 지부장으로 선출됐지만 해고된 그는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여성 노조지도자 교육에서 당시 신인령 간사(전 이화여대 총장) 등에게 배우면서 사회에 눈을 떴다.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 과정 중 비문을 쓰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구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되잡았어요. 노동자로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해야겠다, 노동자와 함께 살겠다는 다짐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죠."

YH사건으로 구속 수감됐던 최 부위원장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풀려난 후 여성 복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여성 노동자운동과 지역 풀뿌리 생활정치, 진보정치에 몸을 던졌다.

1983년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꾸린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는 노동자 교육과 상담을 위한 국내 첫 기구였다. 이듬해 광명에서 전국 최초의 비영리 탁아시설인 보람탁아소를 만들었다. 1989년 부천에서 문을 연 '튼튼히 아가방', '부천여성노동자회'는 척박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씨앗이 됐다.

부천시에 정착한 그는 주민들과 국내 최초 의정 감시단체인 의정지기단를 만들고 1991년에는 시민후보로 부천시 의원에 당선됐다. 주부들과 함께 벌인 '담배자판기 금지 조례'와 학부모에게 급식시설비를 물리려던 정부의 방침을 철회시킨 '학교급식운동'은 풀뿌리 생활정치의 한 획을 그었다.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도 이어졌다. 2004년 민주노동당에 영입돼 진보정치에 나선 그는 장애인 학생의 의무교육을 중등에서 고교까지 확대하는 법안도 관철시켰다.

최근에는 도교육청 시민감사관으로 사립유치원의 비리 감사는 물론 문제점을 찾아내 이른바 '박용진 3법'이라는 제도 개선까지 마련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제기한 문제는 제도개선까지 이뤄낼 수 있도록 해보고 싶어요. 그게 정치에 뛰어든 이유였어요. 지금까지 저의 수식어는 지역 곳곳에 있는 지역 주민과 장애인 학부모처럼 이 땅의 주인인 평범한 시민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예요."

▲민관협치 밑바탕 '시민'과 '공무원'

도내 협치기구의 탄생은 지난 지방선거의 영향이 크다. 20년간 이어온 도의 보수정권이 진보정권으로 바뀌면서 첫 민관협치의 물꼬도 트였다.

"지방선거 때 시민단체의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 협치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어요. 주민 직접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를 약속한 이 지사가 당선됐고 인수위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장을 제안받으면서 본격 논의가 가능했죠. 이후 6개월간 꾸준히 시민사회단체와의 토론, 서울시의 민관협치위원회 사례 등을 검토해 마침내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가 탄생했죠."

협치기구에는 도청의 주요 실·국장,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전문가 등 모두 28명이 참여한다. 운영과 제도개선, 의제 형성, 역량 강화 분과에서 경기도민과의 소통을 이어간다.
그는 민관협치에 대해 한마디로 '행정의 독주시대를 끝내고 이제는 주인인 시민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촛불혁명 때 국가 정의부터 시민의 역할 등 수많은 논의가 이뤄졌는데 근원은 '권력은 어디서 나오나'였고 결론은 바로 '시민'이었습니다. 민관협치도 근원적 질의에서 출발해요. 주인인 시민이 행정과 더불어 정책을 제안하고 견제도 하고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 것도 감시하는 일을 하자는 거죠. 결국 함께 하자예요."

민관협치위는 △추진체계 △리더십 △주체별 역량 △생태계 조성 등 4개 분야 중심의 11개 세부과제를 통해 협치를 도내에 안착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행정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욕심으로 봤다. 민관협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돌봄'이라는 사회서비스 분야 등 복지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분야는 행정만으로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곳도 맞죠. 그동안 우리가 국가성장이라는 미명아래 외면했던 지역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해요. 민관협치라는거죠. 다만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욕심이다.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함께'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및 시민단체 활동가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갈등도 있고 여러 한계도 분명히 있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과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협치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자 원칙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관협치위원회'란?

민관협치위원회는 행정과 거버넌스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도민 등으로 구성된다. 경기도가 지난 1월29일 도민의 의견을 도정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민선7기 핵심기조인 '민관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자문기구다.

민관협치위는 △운영분과 △제도개선 △의제형성 △역량강화 등 4개 일반분과와 1개 특별분과 등 총 5개 분과 위원회로 구성됐다.
4개 일반분과에서는 위원회 운영 전반과 협치 대상 사업선정, 공무원 및 시민단체 활동가의 역량 강화 등에 대한 사항을 추진하게 된다. 각 분과에서는 △추진체계 △리더십 △주체별 역량 △생태계 조성 등 4개 분야 중심의 11개 과제를 수행한다.

민관협치위는 1년에 2차례씩 정기회의를 진행하는 한편 필요할 때마다 임시회의를 열어 민관협치 활성화에 관한 주요사항을 논의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위원장, 이화영 평화부지사와 최순영 경기여성연대 공동대표가 부위원장으로 해서 도 실·국장 6명, 민간위원 20명 등 총 28명이 위촉장을 받고 활동 중이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