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 금기시 되는 3가지 질문이 있다. '애가 어느 대학 갔느냐', '애가 취직은 했느냐', '애 결혼은 언제쯤 할거냐' 등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친척 친지간에 당연한 '인사'였다. 그냥 넘어가면 '무심한 사람'이었다. 왜 이리 됐을까. 성장동력이 멈춰선 하향평준화 사회의 한 풍속도인가.
▶이제 다시 좀 달라지는 기미가 엿보인다. 지난 주 서울에서의 한 저녁자리다. 올해 고교 졸업 자녀를 둔 아버지가 둘이나 됐다. 누가 묻기도 전에 아버지1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이가 바라던 대학에 못가게 되면서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버지는 "재수를 하고 싶다면 기숙학원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의외의 태도를 보였다. "재수해서 대학엘 가도 걱정"이라며 "기술 배워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전 가족이 나서 요즘 뜬다는 항공정비 직업전문학교를 찾아냈다. 학비도 일반 공과대의 60% 수준이었다. 군 복무도 공군 정비병으로 간다고 했다. 입학식날 아버지1이 더 놀란 일이 있었다. 항공정비 신입생 절반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다니다가 기술을 배우러 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2는 더 편하게 얘기를 풀어놓았다. 이 집에서도 재수 여부가 화두지만 거꾸로 됐다는 것이다. 아이는 "1년간 열심히 해서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2는 "굳이 그럴 필요 있겠느냐"며 말리는 입장이다. 주로 이런 논리다.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갈 만한 곳이 줄어든다. 사람은 머리로보다 손과 발로 살아갈 때 세상살이 스트레스가 덜한 법이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2008년 82%까지 치솟았다. 최근들어 69%대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선시대 때 이랬으면 농사지을 이가 없어 논밭을 모두 묵혔을 것이다. 지난주엔 사교육비 부담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학군 좋다는 강남, 목동, 중계동에는 초등학생 가정들이 전세를 얻으려 몰린다고 한다. 이른바 '초딩 교육난민'이다. 그래서 이 곳 초등학교들은 저학년에 비해 고학년 학생 수가 월등 많다. 한번 초등학교 교육난민이 되면 한 10년간은 꼼짝않고 전세살이를 감내한다는 것이다.
▶그간 요란하기만 했던 숱한 개혁에도 불구, 우리 교육은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좀 엉뚱한 데서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 청소년들이나 학부모들이 더 이상 대학에만 목을 매지 않게 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프랑스나 독일 아이들처럼 행복할 수 있다면…. 대학을 외면해야 가능한 한국교육의 희망, 너무 역설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