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올해 100주년의 3·1 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행사들이 지난주까지 이어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 교포들까지 이 뜻깊은 행사들에 가세했다. 경기·인천지역에서는 그간 잊혀졌던 향토 선열들을 재조명하는 노력들도 많았다. 진실로 이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임을 가슴마다 새겼다.
▶그러나 분위기가 고조되면 으레 좀 도를 넘는 주장들도 한몫하려 나선다. 시민들과는 늘 따로가는 정치권이다. 경기도의회 한 의원이 일본 전범기업 제품의 구매를 자제토록 하는 조례를 만들자고 했다. 이들 제품에는 꼬리표도 붙이자고 했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무려 3200개 학교를 전수조사했다고 한다. 절반 정도가 일본제품이었다. 순수 전범기업 제품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마도 수많은 교사들이 이 조사를 위해 빔프로젝터, 카메라, 캠코더, 인쇄기, 복사기들의 족보 캐기에 매달렸으리라.
▶그 의원은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독일과 비교해서도 일본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사회 지도층을 자처하는 이들이 국민감정 부채질에만 앞장서는 게 능사일까. '일본제품 불매' 주장은 새롭지도 않다.
▶지난해 8월 어느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청 및 서울시교육청 산하에 일본산 문구류·비품을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광복절을 전후해서다. 서울시장은 답변에서 "정부 조달시장은 국가간 협정이므로 사용금지 처분 등이 어렵다"고 했다. 또 방송장비, 의료기기, 수질측정기 등의 분야는 대체가 쉽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도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일본 전범기업 구매 자제를 권고하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지금은 문을 닫아 걸고 사는 시대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인 관광객 754만명이 바다 건너 일본을 찾았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292만명)보다 2.6배나 더 많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벨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인가. 아사히 맥주, 세븐 일레븐 담배 애호가들은 골목길로 숨어 들어가야 할 판이다 . 그 전범기업 직원들과 결혼이라도 한 한국인은 지금이라도 이혼을 서둘러야 할 것인가. 이 역시 또 하나의 연좌제는 아닌가. 국가간 제품 불매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쇄국'으로 이어진다. 사회 지도층이라면, 무자비한 총칼 앞에 맨 주먹으로 독립만세를 불러야 했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일에 골몰해야 한다. 그게 다음 선거에서 표를 더 얻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