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경기본사 사회2부장

학부모는 중(僧)이 아니다.
"그럼 안다니면 될 것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속 편한 소리 그만해라. 떠나고 싶어도 다른 절이 있어야 중이 떠나지."
얼마 전 본보에서 "유치원 교과 들으러 갔는데… '사립옹호 영상' 웬 말"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나간 후 달린 댓글 중 일부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그동안 대립해온 사립유치원과 학부모 간의 입장을 그대로 드러낸 축소판이다. 학부모측으로 추측되는 댓글을 분석해보면 대체적으로 불공정함을 토로한다.
일반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소비자가 '갑'이어야 하는데 유치원 문제에 있어서는 학부모들은 철저히 '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발생한 사립유치원 파동 이후 예전처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하기만 하는 '을'이 아니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을'로 변했다. 이 기사도 이런 '을'의 거침없는 반격의 외침 속에서 나왔다.
지난해 '사립유치원 비리' 파문이 일었던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한 유치원이 학부모들에게 사립유치원을 옹호하는 내용의 영상물을 강제로 시청하게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 내용은 이 유치원이 '재원생 예비소집일(오리엔테이션)'에서 참석한 학부모 수 백 명을 대상으로 '사립유치원을 뺏으려 하지 마세요'라는 주제의 영상물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해당 영상물은 '유치원에 간 김교수' 시리즈 중 하나로,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만들었다. 김 교수는 다양성을 근거로 사립유치원 지원 확대 등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해당 영상물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사전 통지도 받지 않았고, 모임 목적에도 동떨어진 영상을 강제로 시청한 학부모들의 입장이다. 학부모들은 유치원 교과과정과 관련된 모임인줄 알았는데 생뚱맞은 영상물을 시청했으니 불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유치원은 취재 과정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립유치원 비리사태와 유치원 3법통과 여부를 놓고 진통을 겪던 지난해 12월에도 있었다.
이때 A유치원장은 '영어 참관수업'으로 강당에 모인 학부모들에게 사전예고 없이 이 영상물을 틀고, 사립유치원 자율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학부모들은 주장한다.
당시 학부모들은 영상물 시청이 끝나야 참관수업이 진행되다보니 보기 싫어도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고 푸념했다. 취재과정도 쉽지 않았다. 반론을 듣기 위해 해당 유치원장에게 수차례 요청했지만 문전박대까지 당했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유치원장은 영상을 틀어준 것이 무슨 문제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따져 물었다. 기사가 나간 후 학부모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부모위원회 설치', '제2 비상대책위 구성' 등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동탄지역 일부 학부모들은 직접 디자인한 '녹색리본' 바탕에 '아이들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을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으로 교체하는 등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예전처럼 억울하게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앞서 동탄지역 학부모들로 꾸려진 '동탄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가 직접 유치원을 운영해 보겠다며 협동조합 유치원 계획을 준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강제 시청 문제에 동탄지역 학부모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여전히 달라진 것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사립유치원이 학부모들에게 보여준 영상의 내용처럼 '유치원은 사유재산이니 자율성을 지켜달라'고 주장하기 전에 독점부터 풀어야 한다.

또 시장경제를 논하기에 앞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대책부터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가 국공립 비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반발만 하지 말고 말이다. 사실 취재 과정에서 느낀 점은 유치원이 공립이든, 사립이든 그저 아이들을 위하는 유치원이 최고라는 사실이다.
유치원이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아닌 어른들의 이해관계로 얽혀져 복마전이 된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