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비장했던 3·1운동 기념공연…해방시켰다
▲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공연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의 총연출을 맡은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감독. 강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공연은 기존의 3·1운동 기념공연에서 다뤘던 순국열사, 독립무장 투쟁 등 매우 무겁고 비장한 이미지와 달리 무대장치와 음악, 합창, 무용을 접목해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행위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최대한 아름답고 행복하게 그리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사진제공=인천문화예술회관

 

▲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 강량원 총연출가는 유관순 열사의 스승이자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생애를 작품화하기 위해 인물 고증에만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유관순 美 유학파 스승 김란사 재조명
인천항 감리서인 배우자 하상기와 함께
지역 개화기 상징하는 진취적인 인물

사료 적어 고증하는데만 2년의 시간
창작희곡에도 좌담회까지 열어 검증 후
4개 예술단체 300명 강행군 끝에 무대로

어린이들 3·1운동 의미 쉽게 이해하고
나라·민족 위한 일 즐겁게 받아들였으면






1일부터 3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공연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은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스승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란사'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 총연출을 맡은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만나 작품의 주인공 선정 등 기획단계부터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지금까지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은 남성 중심적으로 연구되고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독립과 대한민국 수립의 절반은 여성들의 참여와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특히 3·1운동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사람이 유관순 열사이고 그런 생각의 뼈대는 자연스럽게 유관순의 스승 김란사 열사를 주목하게 됐고, 김란사의 배우자인 하상기 독립운동가 또한 지금의 인천시장 지위인 인천감리 겸 인천부윤으로 임용됐던 인물로 이번 공연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 감독이 이번 공연의 주인공으로 김란사를 주목했던 이유는 그녀와 남편 하상기가 당시 지니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그들의 행적과 활동을 통해 인천과 연결고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란사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미국 자비유학생이자 문학사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남편 하상기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상기는 인천항의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감리서(監理署)의 최고 책임자였는데, 구한말의 고위관리가 아내의 결정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 김란사와 하상기의 이런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능케 했던 것은 인천이라는 개화와 수탈이 동시에 진행된 특수한 역사적 장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개화기의 인천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와 이들 부부의 활동은 매우 특별한 연관관계를 가진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공연은 인천시립예술단의 강 감독이 이끌고 있는 극단을 비롯한 교향악단, 무용단, 합창단 등 4개 예술단체가 모두 참가하는 창작 음악극이다. 4개 단체의 합동 공연은 2007년 뮤지컬 '바다의 문'이후 12년만이다.

"지난해 초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 관장님과 4개 단체 예술감독들이 모여 첫 회의를 가진 뒤 몇 차례 더 모임이 진행됐고 저에게 총연출이라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차근호, 최원종, 이시원 작가와 장영규, 김선, 배승혜 작곡가를 섭외하여 전체 일정을 수립하고 8월말 대본이 완성됐고 이에 따른 음악 콘셉트를 10월에 잡은 뒤 12월20일에 작곡을 완료했습다. 임일진 무대미술가가 12월말 무대, 영상, 조명, 의상, 소품 등 모든 구상을 마쳤습니다. 올 초부터 본격 연습에 들어갔는데 2월부터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하루 두차례씩 연습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특히 연기는 물론 음악, 합창곡, 안무 등 모두 순수한 창작극을 합동으로 만들어주신 세분의 예술감독님과 한마음으로 참가한 300여명의 단원과 스태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에는 12년만에 다시 모여 하는 공연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각각의 뛰어난 전문가들과의 협업이어서 어려움보다 창작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 됐고 시립예술단 모든 단원들의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준비한 이번 작품이 관객과 만나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긴다고 생각하니 많이 설레입니다."

총연출을 맡은 강 감독의 지난 1년여에 걸친 준비과정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김란사와 같은 근대 여성의 활동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사료가 적어 고증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실제 김란사는 3·1운동 직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시립극단에서 여러 전문가들을 모시고 시민들과 함께 인천의 근대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했고 단원들과 함께 견학을 다녔습니다. 또 지난해 5월부터 작가들과 함께 더욱 충실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희곡을 완성했는데 이번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술 작품이기 때문에 큰 줄기는 역사적 사건과 자료에 따르고 사건과 일화 등은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창작된 희곡은 다시 전문가들께 보여드리고 좌담회를 열어 검증을 받아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강 감독은 3·1운동 기념 공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순국열사, 독립무장 투쟁 등 매우 무겁고 비장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행위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무대장치와 음악, 합창, 무용이 최대한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그리려 했다.

특히 주인공 김란사를 배우 3명과 무용가 2명이 연령대별로 나눠 표현하는 연출기법을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독립과 미래를 위해 활동했던 김란사 열사와 같은 분들이 한명이 아니라 수없이 많았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고, 관객들도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러명으로 캐릭터를 나누었습니다. 또 이 극에 담긴 김란사 열사의 생을 보면 각각 10년 정도의 시간에 따라 유학생, 혁명가, 독립운동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시간 10여분 안에 전달하기 위해서 고민하다 한 사람이 맡기보다는 어린시절과 청년기, 중년기로 나누는 것이 무대위에서 주인공의 궤적이 더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을 많이 연출한 것으로 알려진 강 감독은 창작 음악극인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3·1운동의 의미를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징을 동원했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을 두꺼비로 표현했습니다. 또 그들이 삼키려 했던 우리나라는 두꺼비가 도저히 삼킬 수 없는 거대한 고래로 상징화하여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고종황제는 두꺼비에게 죽임을 당하나, 김란사를 태운 고래는 별을 향해 날아갑니다. 꺼지지 않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꿈꾸었던 세상에 있는 현재 우리 젊은 세대들이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100년 후의 나라를 꿈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강량원 감독은?


인천시립극단 강량원 예술감독은 러시아에서 연극연출을 공부했다. 1999년 극단 '동'을 창단하여 배우의 신체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연극을 만들었다. 또 '월요연기연구실'을 열어 시대와 세계, 인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연극형식과 연기 메소드를 개발해왔다.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는 2016년 12월 취임했다.
강 감독의 주요 작품으로는 '해무', '열하일기만보', '베서니', '게공선', '인천노트', '상주국수집', '나는 나의 아내다', '투명인간', '비밀경찰', '칼집속의 아버지' 등이 있다.
강 감독은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예술상(2008), PAF연출상(2008),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2009), 올해의연극 베스트3 (2010), 올해의공연 베스트7(2010), 올해의연극 베스트3(2013), 동아연극상 연출상(2016), 동아연극상 작품상(2016), 올해의연극 베스트3(2016), 올해의 공연베스트7(2016)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