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1990년대 거리의 자동차 뒷 유리에 '내 탓이오'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인 차량의 모습은 일상의 흔한 풍경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천주교 평신도들과 함께 사회윤리와 도덕성 타락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부터 책임의식을 갖고 사회 정화에 앞장서자며 시작한 신뢰회복운동 '내 탓이오' 캠페인은 그동안 남 탓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김 추기경은 "자기를 먼저 돌아볼 때"라고 강조했다. 행여나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내 탓이오' 캠페인은 큰 울림이 되어 국민들의 정서순화와 사회 화합에 큰 영향을 줬다. 일반 국민 상당수가 공감하며 호응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정권을 가진 권력층이나 정치인 집단의 참여는 일반 국민들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내 탓이오가 아닌 네 탓이오 바람이 불고 있다. 여당과 정부 인사는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모든 잘못을 전 또는 전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설훈 의원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 하락을 전 정부의 교육이 잘못된 탓으로 돌렸다. 그는 "전 정부 때 초·중·고 교육을 받은 20대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을 못 받아서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자신은 "유신 체제 전에 민주주의 교육을 잘 받은 세대"라고 했다. 또 같은 당의 수석대변인 홍익표 의원은 "왜 20대가 가장 보수적이냐. (지난 정권에서) 거의 1960~1970년대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적대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층의 현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은 모두 전 정부의 잘못된 교육 탓이라는 논리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해 취업자 증가폭이 8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고용 부진은 지난 정부 10년간 생산인구 감소,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 악화 등 구조적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 정부 탓을 했다.

여당은 불리한 때마다 전 정부 탓이라거나 잘된 것은 내 탓이오 잘못된 것은 남의 탓이라는 논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나 싶을 정도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 남 탓만 할 때가 아니다. 과거 정부를 탓한다고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시한번 '내 탓이오' 운동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