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효진의 목숨 건 페루 여행기
▲ 티티카카 호수에서 본 우로스 섬. 갈대를 엮어 만든 배와 전통가옥의 모양이 이채롭다.

 

▲ 콜카계곡에서 바라본, 남미를 상징하는 새인 콘도르의 비행 모습.

 

▲ 우로스 섬 주민들의 모습. 여성들이 입은 전통의상의 화려한 색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발 5000m 안데스서의 고산병
폐에 물 차는 극한상황에도
가슴 벅찼던 콘도르의 비행쇼
티티카카 호수의 신성한 아름다움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마추픽추 보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가족 사랑 보아





"페루 잘 다녀왔죠?" "예, 잘~다녀왔습니다."

죽다 살아 왔으니 그보다 잘 다녀올 수 없겠죠?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새해 첫날, 한 달 일정으로 가족과 함께 이집트와 잉카 문명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런데 5000년전 나일강변 저지대에서 태어난 이집트의 늙은 태양신 '라'에게 흠뻑 빠져든 탓이었을까요?
700여년 전 안데스 산맥 고지대에서 태어난 잉카제국의 젊은 태양신 '인티'와의 만남은 끝내 좌절되었습니다.

'룰루랄라' 투어하던 나일강의 해발 고도는 100m 내외로 평탄한 강변이었지만 안데스 고지는 평균 해발 고도 4000m가 넘는 곳으로 산소가 희박한 험난한 산길이었습니다.

15일 간의 일정 중 5일째 되는 날 새벽 3시에 콘도르를 보기 위해 아레키파 숙소를 떠났습니다. 미니버스로 이동한 지 2시간 정도 지나 해발 5000m 고지를 통과할 때였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차고 구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시간 정도 더 오르락내리락했을까?

마침내 4800m 콜카계곡 콘도르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때마침 운 좋게도 깊이 1000m 이상 되는 계곡의 상승기류를 타고 콘도르들의 비행쇼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가슴 벅찬 광경이었습니다. 고산병을 이겨낸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내 벅찬 가슴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전망대에서 미니버스로 돌아갈 때에는 이미 한 걸음조차 떼기 어려워졌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일반 고산병의 증세를 넘어서 폐에 물이 차고 가래가 들끓는 폐부종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40년전 군에서 폐결핵으로 숨이 차오르던 기억이 데자뷰처럼 떠울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안데스 고지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콜카계곡의 관문 치바이를 떠나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푸노라는 도시로 향했습니다. 평균 고도 4000m를 오르내리는 잉카제국의 길(카퍅 냔) 산악도로를 4시간 이상 달렸습니다.

흔들리는 미니버스 안에서 구토하며 누워 가면서 겨우 볼 수 있었던 그 길은 잉카인에게는 제국으로 가는 꿈의 길이었는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저승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푸노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3800m)에 위치한 호수인 티티카카의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티티카카 호수는 면적이 8500㎢ 이상이고 최대 수심은 281m로 수역을 볼리비아와 반분하고 있는 남미 최고의 담수호입니다.

그곳은 잉카인의 창조 신화의 주역 '파차마마'가 잉카인의 선조를 낳은 신성한 호수입니다.

푸노 선착장에서 가쁜 숨을 이겨내며 3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니 호수 한가운데 갈대(토토라)로 엮어 만든 우로스 섬이 나타났습니다.

갈대 섬에 내려 촌장으로부터 다른 종족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호수 한가운데 갈대로 섬을 만들고 공동체를 구축한 내력을 듣는 가운데 그곳에 사는 어린 소년들을 만나 바디 랭귀지로 몇 마디 나누기도 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민박할 아만타니 섬으로 떠나기 위해 다시 배에 올라 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다시 호흡이 가빠지고 가래가 들끓었습니다.

선창 너머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은 어둠 속으로 곧바로 사라졌고 눈동자의 초점을 잃은 채 천근 같은 몸뚱아리는 티티카카 호수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습니다.

2시간 남짓 타고 왔을까요? 아만티니 선착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먹은 것도 없었는데 호흡에 곤란을 느끼며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구토를 했습니다.

배멀미로 인한 구토가 아니라 폐부종으로 인한 구토임을 경험적으로 알아차렸는지 주변에 있던 현지인들이 나에게 응급처방으로 코카잎을 물리고 물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그날 밤 민박집에서 밤새 호흡곤란과 고열에 시달린 나는 아내와 딸의 밤샘 간호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 날 겨우 혼수상태에서 벗어난 나는 일행들이 아만타니 섬과 타킬레 섬 관광을 마칠 때까지 집사람과 함께 배 안에서 쉬고 있다가 그날 오후 늦게 푸노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숙소로 달려온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산소호흡기를 차고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폐의 산소포화도가 40%미만으로 떨어지는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일행 모두가 겪는 고산병인데 싶어 무리한 여행을 계속한 결과입니다. 고산병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기도 했습니다.

괜찮아질 것이리는 믿음이 하루만 더 지속되었다면 '너와 네 가족의 구원'의 문이 객지에서 졸지에 닫힐 터였습니다.

콘도르가 나르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한 콜카계곡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꼴깍' 계곡이 될 뻔 했습니다.
잉카인의 창조 신화가 깃든 신성한 티티카카 호수가 혼돈의 호수로 더럽혀질 뻔 했습니다.

결국 나의 버킷리스트 쿠스코와 마추픽추는 엄두도 못내고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있는 푸노라는 소도시에서 산소호흡기를 차고 해발 0m 리마로 후퇴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리마에서도 여러 해프닝이 있었으나 결국 기사회생했습니다.

거듭 태어났습니다. '인생은 60부터!' 여러모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마추픽추 같이 보이는 것은 보지 못했으나 가족의 사랑같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제법 보았습니다.

목숨건 고행이었지만, 보람찬 여행이었음은 틀림없었습니다.

마추픽추 산정에 올라 파블로 네루다의 서사시 '마추픽추 산정에서' 열두 편을 모조리 읊고 싶었던 마음이 되살아나니 이제 살긴 살았나 봅니다.

/글·사진 황효진 전 인천도시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