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 변호사

1998년 3월 초 변호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으로서 사회생활의 첫발이었다. 돈도 벌어서 그동안 고시공부 뒷바라지한 식구들 먹여살리고, 사법연수원에서 갈고 닦은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도 해야 되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시작한 초임생활이다. 모든 초임이 그렇듯이 가슴 속에는 미래에 대한 벅찬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돌이켜 보면 그 때의 자신감과 철없는 용기가 부럽다.
법률사무소에 출근하면 아침부터 수시로 드나드는 공증담당 여직원들이 내미는 서류 내용을 검토하고 서명하게 된다. 요즘은 공증을 많이 하지 않지만 IMF 외환시기에는 은행들도 1000만원을 빌려주면서도 모두 약속어음공증을 받을 정도로 살벌한 시기였다. 법률사무소의 공증소득이 예상보다 괜찮았던 시절이다. 물론 이제 새로 시작한 초임변호사는 일만 열심히 할 뿐이지 자신의 개인수입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사건수임이 되지 않을 때는 힘들기도 했다. 모처럼 찾아온 아주머니에게 무려 3시간도 넘는 법률 검토를 해주고 "내일 올께요"라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다음날 하루종일 그 아주머니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조금 더 변호사로서 철이 들고 나서야 그 코멘트는 그 아주머니의 말하는 투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어 실소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사건수임이 이루어지고, 첫 재판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사가 3명인 합의부 배정사건이다.
당시 합의부는 소송금액이 5000만원이 넘는 사건을 다루었으므로 초임변호사치고는 제법 큰 사건을 맡은 셈이다. 통상 법정은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오지만 초임변호사의 심약한 가슴의 고동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한껏 두근거린다. 영화에서 보는 것이나 민사소송법의 규정과는 달리 촉박한 재판진행 시간 때문에 대부분의 재판진행은 법대의 가운데 앉아 있는 부장이 일방적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원고대리인 준비서면 진술하고, 증거제출 하시죠" 이렇게 질문하면 변호사가 "예"라고 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식이다.

연수원의 은사였던 부장이 앞 사건들을 통상의 이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면서 "예"라고 한 다음 증인신청과 함께 기상청 날씨에 대한 사실조회만 하면 될 것이라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준비한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다른 변호사들이 하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사건번호를 부르면서 원고석으로 나아간다. 출석한 변호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다음, 갑자기 법대위에 있는 부장이 "제출하시죠"라고 말을 한다. 당황한 초임변호사는 "이미 다 제출했는데요"라고 뜬금없이 대답하면서 행여 법률사무소 직원들이 빠뜨리고 제출하지 않은 것인지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그러니까, 제출하라고요"라는 말에 얼굴만 빨개진 초임변호사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잠시 후 연수원 동기로 법정의 막내인 좌배석판사가 손을 가리고 가볍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주위를 둘러본다. 아뿔싸, 참석한 모든 변호사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장 역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원래 하던대로 자신이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초임변호사는 그제서야 연수원 은사가 제자를 놀림감으로 삼아 하루 즐거움의 소재로 삼은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초임변호사는 사무실 근교에 있는 서울, 인천, 경기의 각 법원을 다니며 재판을 진행한다. 업무는 늘어나지만 아직도 사건처리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초임변호사는 수시로 야근을 하고 낮에는 법원의 시간표에 따라 차량을 운행하면서 "택시 운전수가 따로 없네"라는 푸념을 저절로 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병아리는 성장하게 된다.

20년의 세월이 화살처럼 흐르고, 별다른 재주가 없어 한 직장에 머물다보니 어느덧 최고참 변호사가 됐다. 초임변호사 2명을 받아들여 함께 일하게 되면서 이들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아마 직업, 직장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슴 속에 뒤섞여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두려움을 씻어주고 체계적으로 키워 스스로 자기 발로 멋진 법률가로 설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아이를 키울 때 항상 초보인 엄마처럼 선배의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 시기에 놓인 것이다.

어떤 것이 최선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첫째, 초임변호사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슴속에 지니고, 둘째, 따뜻한 동행자로 받아들인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물론 전문가로서의 변호사에게는 끊임없는 판례 및 이론공부를 할 수 있는 기본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어린 초임변호사들이 보라매가 창공을 나는 것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격려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