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서 전 송도중학교 교장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8일 구성원 간 호칭을 '선생님' 대신에 '쌤'이나 '프로', '님' 등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불과 하루만에 "확정하지 않았다"며 물러선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다음날 9일 발표한 '서울교육 조직문화 혁신방안'에 대해 본청 및 교육지원청과 학교 등에서 구성원 간 호칭을 '○○쌤'이나 '○○님', '○○선생님' 가운데 하나를 자율적으로 부르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당시 서울교총은 "안 그래도 매 맞는 교사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등 교권 추락이 심각한 사회문제인 상황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없애는 것은 교사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교육 당국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도 "수평적 호칭제 등은 학교현장의 정서와 동떨어진 느낌"이라며 "'OO쌤'이라는 호칭은 표준어도 아니고, 국어사전에도 '교사를 얕잡아보는 호칭'으로 나와 있다"고 반발했다. 현장 교사들도 "온라인이나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님'은 비하나 비꼬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주는 최소한의 권위마저 없애버리면 학생 지도에 어려움과 가뜩이나 무너진 교권"을 더 실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호칭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설정해 주는 힘을 가진 언어 수단으로 대상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호칭은 예의에 맞는 표현을 만드는데 기본이 된다. 언어에서의 예절, 특히 사회적 정체성의 성립은 좁게는 호칭을 통해, 넓게는 경어법을 통해 구현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호칭과 말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을 보게 한다. '선생님'을 '샘'도 아닌 '쌤'의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사용하거나 전달할 때,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그것은 모두 말의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연구의 개척자인 주시경 선생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줌으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함으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 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니라.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뜻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서는 일도 어두어 가나니라(1910년 6월 '보성친목회보 제1호')"라 하여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사나 학생들이 친근감의 표현으로 '선생님'을 줄여서 '쌤'이라고 부르는 일이 종종 있지만, '샘'은 '선생님'의 줄인 말로 상대한테 당당히 본딧말을 하지 못하고 홑단어로 통칭하는 속어로 표준어가 아니다.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바른 호칭 사용을 사용하기는커녕 은어 사용을 권유하니 황당하다.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말의 힘을 사용하느냐 일 것이다. 말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돕고 형성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그렇기에 한 나라의 말과 호칭은 그 민족혼이 담겨 있는 것인데, 서울시교육청에서 수평적 호칭제를 도입하겠다고 구성원 간에 호칭을 '~님, ~쌤'으로 통일하고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선생님이 아닌 영어 이름이나 별명 등을 부르라고 했던 것을 주시경 선생이 들으면 지하에서 통곡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