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잘라 보여라, 굳은 결심을

 

▲ /그림=소헌 '베틀(匕)에서 짜던 베(絲사)를 도끼(斤근)로 단번에 끊다(斷단)'

 


오로지 입시만을 지향하는 교육 세태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SKY 캐슬'에서는 특권층에서 벌어지는 교육 부조리들을 다뤘는데, 자식교육에 나약한 부모들의 피해의식은 일상 대화에서 그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 이후에도 맹자가 공부를 게을리 하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를 자름으로써 학업을 중단하면 '잘린 베와 같은 꼴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孟母斷機(맹모단기)가 나온 유래다.

독립운동가 황병길 선생은 스무 살에 러시아로 망명하여 의병대에 들어갔는데, 혼자서 무려 일본군 1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어 '훈춘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선생은 안중근, 김기열, 백낙길 등 12명이 함께 약지를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 血書(혈서)하는 斷指同盟(단지동맹)을 거행한다.

"모든 반일투쟁이 황병길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체포에 총력을 다하라." 국내로 진격한 선생이 왜정기관을 폭파하고 왜군밀정을 주살하는 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자 일제가 내놓은 지시문이다. 선생은 청산리 전투 후 35세 젊은 나이로 순국한다.

斷指(단지)는 '손가락을 자르다'는 뜻이다. 부모가 병들어 위중한 때에 자식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였다. 또한 같은 이념으로 모인 사람들끼리 굳은 맹세를 할 때에도 그렇게 피를 받아 나누어 먹었다.

▲斷 단 [끊다 / 나누다 / 결단하다]

1.물레나 베틀(匕)에 씨실(絲사)과 날실(絲사)이 어우러져 옷감을 짜는 데에서 (이을 계)가 나왔다. 하지만 단독으로 쓰지는 않고
2.여기에 한 번 더 실()을 강조한 繼(이을 계)를 쓴다.
3.이렇게 힘들게 만든 실타래()를 도끼(斤근)로 찍어서 끊어 버리면 斷(끊을 단)이다.

 

▲指 지 [손가락 / 발가락 / 가리키다]

1.手(손 수)는 부수로 쓸 때 (수)가 된다.
2.旨(뜻 지/맛볼 지)는 聖旨(성지)라 하여 '임금의 뜻'이라는 의미와 항아리(曰)에 담긴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본다는 의미가 있다.
3.두 글자가 합쳐서 생긴 指(손가락 지)는 무언가를 '가리키다'는 뜻도 있다.

의정활동에 가장 바쁜 시기라 의원들이 돌아가며 '5시간30분'씩 斷食(단식) 농성을 한다는 거대 야당 덕분에 지난 주말을 웃으며 보냈다. 음식을 끊는 단식이야 말로 그저 살을 빼기 위하여 하는 웰빙이 아니라 '목숨'을 내건 불복종 무저항 투쟁인 것이다. 이러다가 개그맨들은 뭐 먹고 살라고? 이제 진정한 단식은 개그맨들이 나설 때다.

때로는 헝클어진 세태를 무리하게 풀어내려고 하는 것보다 단번에 잘라내는 決斷(결단)이 필요하다.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거든 斷食(단식)하는 척 할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잘라(斷指단지) 보여야 할 것이다.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