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유럽 여행 중 트램(tram) 신세를 많이 졌다. 도시 곳곳으로 이어져 편리했고, 빠르지 않아 주변 풍경을 느끼기 좋았다. 낯선 이방인들과 잠시나마 좁은 공간을 공유할 수 있었던 건 덤이다. 물론 값도 쌌다. 각양각색 트램이 도시를 누비는 풍경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비슷한 생각일까, 유럽에는 트램 또는 그 비슷한 교통수단이 많다. 독일이나 러시아는 물론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대략 50여 국가의 400여 도시에서 운행하고 있다. 기능은 비슷하건만 명칭은 트램, 트롤리, 트램카 등으로 여럿이다. 우리말로는 노면전차(路面電車)쯤 될텐데 그리 쓰는 이는 별로 없다.
한때 노면전차가 이 땅에서도 운행되긴 했다. 비운의 19세기 말인 1898년 12월 '경성전차'가 서울 서대문~청량리 구간을 오갔다. 이후 노선을 확장, 외곽까지 연결했다. 하지만 운행 기간은 70년 남짓. 해방과 전쟁, 뒤이은 산업화에 따른 교통량 증가와 토지 활용 비효율성 등 논리에 밀렸다. 결국 박정희 정권 때인 1968년 국내 첫 노면전차는 자취를 감췄다.

북한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운행하던 전차가 같은 논리로 한때 폐기됐다. 하지만 1991년 되살려 평양 시민들의 교통수단이 됐다. 함경북도 동해안의 북한 최대 중공업 도시 청진시도 1999년도부터 노면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최근 여러 도시가 트램 도입에 나서고 있다. 선두에는 위례신도시와 경남 창원, 수원시 등이 있다. 명분은 같다. 지하철보다 예산이 덜 들며 빠르게 설치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더 해 친환경적이며, 도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배경이야 어떻든 트램 설치는 과거 폐기된 노면전차를 다시 불러내는 거다. 300㎞/h 열차시대에 35~40㎞/h대의 느리고 자주 서는 교통수단 설치는 시대의 역주행인 셈. 그럼에도 여러 도시가 추진하는 건 교통정책 명제가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일 거다. 그 하나는 '더 많은 도로 내면 더 많은 차가 그 도로를 채운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원활해야 한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