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 일상서 양질의 문화 향유토록 노력"
▲ 정세훈 인천민예총 이사장이 2019년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정세훈 인천민예총 이사장. /사진제공=정세훈 인천민예총 이사장


환하다. 정세훈 인천민족예술인총연합(인천 민예총) 이사장의 모습이다. 노동해방은 영원한 숙제, 그렇기에 쓰고 또 쓰며 가난한 민중의 노래를 세상에 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력 31년, 뒷짐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치열한 현장에서 늘 그를 만날 수 있다. 공단에 기댄 노동 현장의 이면에 가려지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인천 민예총의 성숙에 몸을 불사르는 것은 당연하다. 차별받는 민중 앞에 방패가 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창이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죽음을 초월하는 시를 쓰고도, 그의 시어는 모나지 않고,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말들로 엮여 있다. 정세훈 이사장을 만나 인천 민예총이 올해 걷게 될 길과 그의 목표를 들었다. 그의 말에 희망이 있기에 표정은 늘 환하다.

"문학이 많이 병들었다."

뜻밖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하고 연하며 따뜻한 품처럼 여겨지는 그의 시와 인격에서 상처난 단어를 끄집어 낸 것을 보면 어지간히 속상한 것 같다. 동시가 그림과 엮인 시화집 '공단 마을 아이들'을 준비 중 여러 지인으로부터 "팔릴 책을 만들라"는 말을 들으면서다. "시 쓰는 사람이 팔릴만한 시를 씁니까. 병들었다. 책 팔려는 목적으로 글 써 본적은 없다." 단호한 그의 말이다.

그래도, 공단에 기대는 고단한 삶에도 '아이들'이라는 '희망'의 꽃을 찾아 동시집을 출간하겠다는 정세훈 인천 민예총 이사장의 눈에는 한없이 따뜻한 빛이 일렁였다. 그렇다. 아픔을 아픔으로 끝내지 않고 그 속에서 무한한 사랑을 엮어내는 시인이 바로 정세훈 인천 민예총 이사장이다.

겨울 한복판에 '춥다'는 표현은 식상하다. 되레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이 와닿는다. 그런 날씨 같은 지난 8일, 남동구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1층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 자연스러운 머리결 자유스러운 복장이 인상적이다.

건강이 염려됐다.

"아프고 나니 몸에 맞는 게 없어 10대 옷을 입게 됐다. 그에 맞춰 허리띠도 했다." 그는 2006년 큰 수술을 했다. 16살 나이, 고향을 떠나 먹고 살기 위해 공장을 찾았고, 거기서 얻은 진폐증이 몸에 씻기 힘든 상처를 입혔다. "피부가 짓무르는 병이 진폐증 전조증상이었다. 에나멜 동선 만들던 공장에서 석면을 썼던 걸 아프고 나서야 알게됐다"는 설명이다. 회복 불능이란 의사의 천청벽력 같은 진단, 삶을 정리하며 엮은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의 시집은 그렇게 나왔고, 다행히 성공적인 수술 덕에 생을 잇게 됐다. 죽은 후 함부로 사라지기보다는 남아있는 모든 걸 위해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시로 태어났다. 사후조차 희망을 얘기하는 시인의 운명이다.

오랜 병마와 싸운 후 회복된 몸을 헛되이 하지 않는 그, 한국 민예총 이사장을 대행하며 2016년부터 지금껏 당시 민중의 함성에 그 역시 하나의 소리가 되려 애썼다.

인천 민예총에 듬뿍담긴 애정과 근심이 교차한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인천 민예총 이사장에 연임됐다. 앞으로 3년간 더 인천 민중을 위해 보탬이 돼 달라는 선·후배 예술인의 요구에 응했다. 그는 추대 인사말에서 "젊은 후배들 중 덕망이 있는 분이 차기 이사장을 맡아 인천 민예총을 더욱 건강하게 발전시켜 주길 바랐다"며 "회원들의 보다 나은 예술활동 환경과 그로 인한 인천시 문화예술 발전을 통해 인천시민들이 일상 삶에서 양질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더 나아가 인천민예총이 촛불혁명으로 일군 현 정권이 민중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백성을 위한 제7공화국 탄생에 이바지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다짐은 걱정부터 앞선다.

정 이사장은 "인천 민예총 100여 회원 중 젊은 회원이 많아져야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모든 예술단체가 겪는 현재 상황이지만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활력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아무래도 세대가 다르고 그에 따른 변화에 따라 젊은 친구들이 단체에 소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하는게 숙제다. 젊은 친구들이 와서 생기가 있고, 생산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가난한 예술인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고, 무궁한 창작의욕을 불러 넣을 수 있는 인천시의 세심한 지원 사업 보조 요구는 "3%에 그치는 인천 문화예술 예산은 5%까지 인상돼야 인천의 문화 예술 발전이 그나마 타 지역과 비슷하다"며 쓴소리를 했다.

신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에는 "최소한 인천문화재단이라는 명칭을 고민하는 곳이 돼야 하고 최소한 수장이 될 사람은 그 명칭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문화재단은 엄연히 시민들을 위한 곳이다. 스스로 자기네들이 문화재단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인천 민예총은 최근 남과 북의 화합 분위기에 맞춰 대북사업 준비에 나섰다. 남북 문화예술계가 함께 하는 행사를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이주영·이아진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
정세훈 인천 민예총 이사장은…병마 싸워 이긴 노동시인

1955년 충남 홍성에서 낳다. 가난은 일찍 그를 노동 현장으로 내몰았고, 큰 공장에 다니고 싶다는 어릴적 꿈은 펼치지 못했다. 20여 년의 공장 생활, 얻은 것은 시(詩)요 잃은 것은 건강이다. 진폐증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경험했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등단을 했다. 그러나 정세훈은 뒤늦게 이 잡지에 그의 시가 실린 것을 안다. 공식적으로는 1990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세상에 그의 시를 알렸다.

시집은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1989), '맑은 하늘을 보면'(1990),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1992),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1994),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1998)가 있다. 병마와 싸우며 삶을 정리해 쓴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2006)는 자칫 유고집일 뻔했다. 다행히 생을 이으며 '부평 4공단 여공'(2012), '몸의 중심'(2016) 등이 나왔다. 시화집으로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2018),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2000)가 있다.

인천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예총 이사장 대행 등을 지냈고, 현재는 인천민예총 이사장을 연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