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 경기본사 사회부 기자


'시간이 많지 않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이귀녀 할머니가 지난 14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올해에만 8명.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25명 남았다. 많은 이들은 하루하루 새해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그 하루가 야속하기만 하다.
지난해 일본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취재에 나서기 전까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통의 크기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과 관련 서적과 영화 등을 접하면서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일본의 위안부 만행은 잘 알려졌듯 극치였다.
어린 소녀들은 하루하루를 죽을 힘 다해 버텼다. 광복 후 집으로 돌아온 소녀들은 한국 사회의 냉담함 속에 또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금껏 숨죽여왔다. 소녀들은 백발이 성성해진 지금까지 일본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내 청춘은 안 돌아오네… 죽기 전에 사과 한마디 듣고 싶다"는 고 안점순 할머니의 한 맺힌 목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사회가 지금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보듬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법원이 일본정부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 재판을 질질 끈 사법농단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할머니들에게는 그동안 국가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는가. 만행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일본정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 할머니들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고 한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또한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에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도내 곳곳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 중이지만 지지부진하고 있다. 시민 주도로 활발히 추진됐던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이 관심이 낮아지면서 동력을 잃고 있다고 한다.

소녀상은 비록 조형물이지만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려 사죄를 촉구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다. 특히 민족 아픔과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깃든 소중한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을 때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 책임은 국가와 후손에게 있다. 할머니들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일본의 사과와 명예회복 조처가 이뤄지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