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매년 12월 이 맘때쯤.각종 언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환하게 웃는 아빠, 엄마의 손을 잡은 어린이가 커다란 구세군 자선냄비에 사랑의 동전을 넣는 모습이다. 요즘에 변한 것이 있다면 어린이의 손에 들린 돈이 동전이 아니라 지폐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 풍경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자리잡고 있다. 울리는 사랑의 종소리는 잠시나마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게 만든다. 빨간 자선냄비가 우리에게 익숙한 하나의 거리 풍물로 자리잡은지 올해로 90년째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냄비가 달궈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은 기독교의 한 교파인 구세군 여성사관인 조셉 맥피에 의해서다. 1891년 겨울,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난파선 난민이 몰려들고 도시빈민이 늘어나자 이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예전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주방에서 사용하던 냄비를 거리에 내걸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고 그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민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성금이 모였다.

이후 '굶주리는 이웃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한다'는 기치아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우리나라에서 첫선을 보인것은 1928년 12월 15일 서울 명동에서다. 일제의 수탈과 세계공황의 여파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넘쳐나자 이들을 돕기 위해 처음 시작된 것이다. 당시 명동일대 20곳에 설치된 자선냄비에서 모아진 금액은 848원 67전이며 이 돈으로 130여명의 걸인과 가족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이후 자선냄비는 매년 거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종을 울리며 이웃사랑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90년을 한결같이 우리의 곁을 지킨 구세군 자선냄비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되고 모범적인 이웃사랑 실천운동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자선냄비는 경제가 어렵거나 좋거나 항상 온기가 넘쳐났다.국가부도 직전의 경제위기를 맞았던 1997년과 그 이듬해에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자는 온 국민의 마음이 모이면서 오히려 더 달아올랐다. 하지만 올해는 자선냄비가 좀처럼 달궈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명동거리 구세군 자선냄비조차 얼어붙었다고 한다. 한국구세군 자선냄비본부가 집계한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9일까지 전국 모금액은 27억4401만98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2억6958만2600원보다 16.07% 줄었다. 경제가 더 어려울때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도 이유지만 흉흉한 사회 분위기가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면서 기부의 손길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따뜻한 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