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의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세계이주민의 날인 12월18일, 스리랑카인 니말씨는 미등록체류자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영주권을 얻게 되었다. 그는 작년 2월 경북 군위군의 화재현장에서 90대 할머니를 구한 의인이다. 그의 자기희생적 행위는 그가 우리 이웃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표로 된 것이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 일원임을 의미하며, 친구가 되는 일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 이웃을 만드는 일에 우리가 참으로 인색했던 것은 사실이다.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오랫동안 이방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쉽지 않게 하였으며, 특히 어두운 피부 빛깔의 이웃에게는 더욱 냉정해지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몇 해 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전국 20세 이상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거리'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미국인이 2.08로 1위를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새터민(2.28), 중국동포(2.48), 일본인(2.52), 동남아인(2.77), 중국인(2.78), 몽골인(2.82),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인(2.90) 등의 순서로 사회적 거리를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이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동포나 우리 주변의 동남아인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 더 사회적 거리를 가깝게 느낀다는 것이다. 시혜 대상으로 간주되는 동남아인보다는 우리 사회보다 발전된 것으로 인식되는 일본이나 미국의 국민을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친근감을 만드는 정직한 미국인이나 깨끗하고 단정한 일본인 이미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거리감을 증폭시키는 열등한 타자로서 동남아인에 대한 이미지는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단정한 일본인의 이미지처럼 동남아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은 다수의 결혼 이민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시혜의 대상 혹은 열등한 타자로 집단 정형화하는 미디어의 왜곡된 시선에 기인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인식의 상당 부분은 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 속 이미지가 우리 머릿속의 상을 만들어 낸다.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묘사는 단편적이고 왜곡된 경향을 지닌다. 우선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도에는 사건·사고가 대부분이며 이주민 여성은 위장결혼, 가정폭력, 고부 간 갈등 등 부정적 프레임으로 보도되기 일쑤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주로 사회 부적응자나 심리적 장애로 인해 공격성이 강한 아동이나 왕따로 묘사된다. 미디어의 이주민 묘사는 이주민을 우리 사회의 열등한 존재로 주변화시킴으로써 도움을 줘야 하는 '시혜'의 대상 혹은 '사회부적응자'라는 정형화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이주노동자나 이주민 여성에 부정적 묘사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정적이며 왜곡된 보도나 묘사는 일반시민들에게 다문화 사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이주민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심어준다.

결국 이러한 미디어의 묘사가 이주민에 대한 우리 시민의 배척을 조장하며, 다른 한편으로는이주민들이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미디어와 이를 수용하는 사회에 반감을 키우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사회가 그 사회갈등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의미한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다문화 사회에 대한 철학을 갖고 체류 외국인, 특히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보도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체류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희귀한 경험으로 볼 수 없다. 2018년 10월 통계에 의하면 외국인 체류자 수는 237만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내국인 노동자들의 특정 업종 기피 현상이 심화하면서 유입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느 새 한국 노동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같은 시기에 농촌총각 장가가기 일환으로 등장한 결혼이주여성도 이제는 도농을 가리지 않고 우리 이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미디어는 다문화 사회의 일원들을 편견없이 다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