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 인하대언론정보학과 2년

"화가 나서…", "순간 욱해서…" 요즘 사건 소식을 접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듣는 말이다. 화가 나서 살인하고, 폭행하고, 학대하고, 감금하고, 도주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엔 분노가 만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3~2017년)간 발생한 살인범죄 4894건 중 42.75%(2092건), 폭력범죄 184만5387건 중 40.72%(75만1384건)가 우발적이거나 현실불만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살인, 폭력 범죄가 '분노' 때문이다.

인터넷에선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는 미국인, 쑥스러워 하는 일본인, 싸우는 한국인'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보인다. 우리는 분노가 '만성'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절제되지 못한 분노는 고질적인 사회 분위기가 원인이라고 본다. 무한한 경쟁에 익숙해있고, 사람 그 자체보다 그의 배경에 더 관심을 가져온 사회 분위기는 어떤가.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남을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누군가의 배경을 보고 내 태도를 결정해왔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내 감정을 앞세웠고, '만만하다'고 생각되거나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어김없이 분노가 표출됐다. 분노범죄와 함께 대두되는 '혐오범죄'도 이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관용이 부족하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이기도 한 관용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사랑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관용은 사람만이 가지는 이성, 그리고 다름에 대한 인정에 기반한다.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이해하며, 이성이란 무기로 절제된 감정을 다루는 이 관용이 우리 사회 속에서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2년 전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다. 그 해 서울 진압경찰로서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있던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연일 비폭력을 외치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며 평화로운 집회를 이어갔던 그 날의 민주시민들을 상기한다. 이성적 사고 속에 절제된 분노를 표출하던 관용의 민주시민들이었다고 생각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청취자의 소식을 들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관용을 향한 첫 걸음이다. 분노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가장 필요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이름 모를 다른 이에게 기분이 태도로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