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광 사진작가
김보람 예술감독·안무가
▲ 유년시절에 겪었던 경험과 기억을 카메라에 담는 양재광 사진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양재광 사진작가
렌즈로 담는 추억 … 기술보다는 '감성'

한 두장 쓰기도 아까워했던 낡은 수첩, 하교 길을 재촉하던 장난감, 나도 무언가를 모아보자 해서 시작했던 우표와 스티커. 지금은 어디에 뒀을지도 모를 먼지 쌓인 어린 시절의 추억들 … 그것들을 꺼내어 카메라 렌즈에 담아냈더니 추억 앨범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공장에서 찍어낸 흔하디 흔한 이 물건들이 나의 추억과 더해져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값진 물건으로 탄생한다. 추억을 기록하는 사진가, 동심을 아직은 잃고 싶지 않은 키덜트, 양재광(42)을 만났다.

"살아가는데 누구의 매뉴얼대로 따를 필요는 없어요. 나답고, 내가 즐겁고, 내 인생이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예요."

신도시의 표상이 된듯한 절대 도시, 성남 분당의 아파트 단지 사이를 비집고 낡은 사진 하나가 떠오른다. 최근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사진 작업을 펼쳐오고 있는 양재광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먼발치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와 어린 아이같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양재광 작가는 본인이 유년시절에 겪었던 경험과 기억을 소재로 시간이 흐른 뒤 지난 기억들에 대한 재해석을 사진 작품으로 남기는 아카이브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취미 중에 하나는 벼룩시장 혹은 박람회장같은 곳을 다니며 소품들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해요. 한두 개였던 소품들은 셀 수 없이 많아지게 됐죠.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뭐라도 쓸모 있게 만들어 보자 해서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죠."

이 작업들은 지난 3월, 양재광 작가의 개인전시회 '인생을 바꾸기 위해 버려야 할 몇 가지 것들'을 통해 공개됐다.
"전시 제목을 인생을 바꾸기 위해 버려야 할 몇 가지 것들이라 정한 이유는 물건들 즉 미련을 버리면 인간으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 같은데 막상 버리지 못하고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 데에서 이렇게 정했어요."

그의 모든 작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이 '추억'을 활용한 작업들은 8년 전 '신도시 소년' 작업에서도 볼 수 있다. 2010년도에 개인전을 가진 '신도시 소년' 작업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으로 작업해 오고 있다.
신도시 소년은 양 작가가 자라 온 경기도 성남의 분당 뉴타운을 배경으로 팽창되는 도시 변화를 보며 작가 본인이 느꼈던 감수성, 도시 풍경 모습 등을 담은 인생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경기도 분당은 저에게 일어난 사건, 추억들의 대부분이 되는 곳이죠.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 가운데 하나이고 저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진 예술가로서 변화의 기록들을 담아낸 작업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사진작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숱한 그의 작업들과 전시회 이력들이 무색할 정도로 사진에 관심없던 그였다. 어느 날 우연히 만지게 된 카메라에 조금씩 흥미가 생겼고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사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 4학년이 되어 졸업을 할 때까지도 사진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막막했어요. 나름 사진학과를 전공했고 전시회를 열긴 열어야 하는데 루트를 몰랐죠.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열게 된 첫 전시회가 기억에 남고 그때부터 17년째 카메라를 놓지 못하고 있네요."

그는 꾸준한 사진 작업을 제외하고도 예술기획 단체 미디어 줄의 일원으로 서울 꿈다락 토요 문화학교와 다문화 미술아카데미 등에서 아이들을 만나 사진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테크닉적인 부분을 가르치기보다는 감정을 전달하고 감성을 이해하는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딱딱한 공부라는 개념보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풀어나가고 있는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강풍 앞에 허무하게 부러질 통나무의 삶보다 바람을 즐기는 대나무 같은 삶을 꿈꾼다. "모진 시련 앞에 유연한 사람이요, 어떤 고통들도 지나가겠거니 그 자리에서 묵묵히 걷는 삶과 내가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어요."

#해시태그 토크
#탐험가 #수집가 #동심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결국은 여러 장소를 탐험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전 탐험가이기도 하죠. 사진 역시 이미지를 수집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동심은 세상을 대하는 저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 무용단체인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 무용단체인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김보람 예술감독·안무가
있는 그대로 '느낌' … 진정 춤꾼의 몸짓

80년대 생이라면 당대 최고의 춤꾼, 마이클 잭슨을 기억한다. 동네에 잭슨의 음악을 들으며 머리와 바지춤을 잡고 리듬에 따라 몸을 들썩이던 꼬마 춤꾼들 한 명씩 있었다. 당돌하게도 그의 백댄서를 꿈꾸던 '꼬마 잭슨'이 팝의 본고장 무대에 오르자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청년 춤꾼의 몸짓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예술감독 김보람(36)을 만났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마세요. 오로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멀리서도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검은 수염, 뿔테 안경, 반쯤 삭발한 듯한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무엇보다 뿜어져 나오는 그의 자신감. 예술 감독 김보람의 시그니처다.
"제 외모에 많이들 무서워 하시더라고요(웃음)." 위트있게 내뱉은 그의 농담이 처져있던 인터뷰 현장 분위기를 바꾼다.

김보람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 무용단체인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를 주축으로 마음 맞는 이들이 모여 만든 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올해로 벌써 10년째 무대에 서고 있다.

"워낙 춤을 좋아하다 보니 저희가 할 수 있는 춤이 뭐가 있지라는 고민들을 함께 해오다 지금은 현대 무용수들의 등용문이 됐죠."

그에게 춤이란 유년시절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같은 존재였다. 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아스팔트 길 한복판 위일지라도 그가 춤을 추면 곧 무대가 됐다. 사람들은 그의 춤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그의 춤은 방송무대까지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채정안, 엄정화, 이정현, 조성모, 코요태 등 최고의 가수들의 백업 댄서로 활동하며 일약 스타 백댄서 반열에 올랐다.
"99년부터 백업 댄서로 시작해 7년간을 활동했고 채정안의 편지라는 곡의 메인 댄서가 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습니다."

백업 댄서로서 최고의 자리에 섰을 때 그에게 불현듯 슬럼프가 찾아왔다.
"막막했죠. 길거리부터 시작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들과 춤을 잘 춰야 된다는 중압감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이후 춤을 왜 춰야 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안무가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됐고 안무가의 인생을 살게 됐죠."

안무가로서 다시 살기 시작한 김 감독의 제2막 인생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난 2016년 김 감독과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북미 최대의 공연예술마켓 무대인 뉴욕 APAP무대에 오르게 되며 미국 시장에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4년도 당시 팜스초이스에 선정된 것을 발판 삼아 페스티벌에 저희 팀이 초청되면서 쇼케이스 형태로 미국의 3개주를 돌며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색다른 경험이었죠."

여전히 현역 댄서로도 입지가 굳건한 김 감독은 현대무용 삼대장 김보람, 김설진, 김용걸이 뭉쳐 볼레로 음악을 각자의 개성에 맞게 소화해 낸 댄스 공연 '쓰리 볼레로'의 공연에서도 활약하며 전방위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후배들에게 냉철하고 어려운 사장님보다는 친근하고 즐거운 선배로 다가가고 싶다고 한 김 감독에게는 10년간 지켜온 철칙이 있다.
"저와 춤을 하겠다고 찾아온 이들을 막지 않아요. 반대로 그들이 그만둔다고 포기하는 순간 역시 막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판단을 지켜만 봐줄 뿐이죠."

수단이 되는 춤보다 진정 춤을 사랑하는 천생 춤꾼, 김 감독에게는 바람이 있다.
"어제 뉴스 방송에서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했죠. 보통 때 같으면 한곡을 마치기도 전에 끝났을 공연은 끝까지 연주됐죠. 손석희 아나운서의 주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춤도 마찬가지예요 나를 즐겁게 해주는 춤, 나에게 위안이 돼야 하는 춤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해시태그 토크
#수염 #춤 #돈
어렸을 때부터 수염은 저의 상징이 됐죠. 또 춤 역시 반평생을 함께한 동반자같은 존재이며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열심히 일한 대가의 돈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