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억새풀을 헤치며 제관(祭官)들이 가을 산길을 오른다. 산감나무 잎사귀들은 아직도 붉고 한 두개 까치밥도 더러 보인다. 머리에 유건(儒巾)을 쓰고 흰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는 품이 보기 좋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좀 젊은 제관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도 저출산 탓인가, 제관들의 노령화가 역력하다.
▶지지난주 주말 전국의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음력 시월 상달의 묘제(墓祭) 행렬 탓이다. 선산의 골짜기마다 묻혀있는 4대조 이상의 조상들을 찾는 걸음들이다. 시제(時祭) 또는 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하는 묘제는 오래 이어져 온 추수감사 의식이다. 산소를 돌보는 성묘 의식에 예법이 더 보태진 산제(山祭)쯤 된다. 이제 사라진 곳도 많지만 저 아래 남도 지방에서는 여전히 그 맥이 살아있다.
▶산에 오르면 먼저 솔가지를 꺾어 모닥불을 피운다. 조상들의 혼을 부르는 분향의 불씨를 마련하는 일이다. 다음은 산신제를 지낸다. 조상들의 무덤을 산이 지켜준다는 믿음에서다. 입향조(入鄕祖) 산소부터 차례로 제를 올린다. 첫 술잔을 올리고 모두 엎드리면 낭낭히 축문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 세차(維 歲次)'로 시작해서 '상향(尙饗)'으로 끝나는 그것이다. '시절이 흘러 벌써 서리와 이슬이 내렸습니다. 선조의 산소를 매만지고 우러르니 흠모의 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가 맑은 술과 시절 음식을 올리나니 부디 흠향하소서.'
▶예전에는 온 산이 흰 옷 차려입은 제관들과 부녀자들로 뒤덮혔다. 이제는 젊은이도, 며느리도 찾아보기 힘들다. 배고픈 시절, 묘젯날이면 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떡을 받으러 산에 모여 들었다. 아이들은 어느 문중 묘사의 떡 인심이 더 후한지도 훤히 꿰고 있었다.
▶이 골짝 저 골짝을 다 누비고 나면 짧은 가을 해가 다 기운다. 음복 술에 불콰해진 제관들이 맏집에 모여 문회(門會, 문중회의)를 가질 차례다. 한지 묶음에 붓글씨로 써내려간 문회 문서를 뒤져보니 소화 9년(1934년)이 첫 장이다. 당시 묘제 비용을 위한 문중 자산이 165원이었다. 어떤 술과 음식을 누가 준비했는지까지 소상하게 남아있다.
▶그나 저나 올해 문회도 내년 묘제 준비가 최대 현안이다. 예전 7벌에서 단 두벌로 음식 준비가 줄었지만 맡을 사람이 없다. 마을에는 꼬부랑 할머니들만 있고 도회에 있는 며느리들은 엮이려 하지 않는다. 가을 추수가 별 의미 없는 시대이니 묘제도 그리 된 것인가. 앞으로 5년, 10년이나 더 갈수 있을까. 서산낙일(西山落日)처럼, 쓰러져 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좀 처연한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