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서 한그릇 뚝딱 … '오래된 것들'의 따스함
▲ 곽현숙(오른쪽) '아벨서점' 대표와 권은숙 '나비날다' 서점 대표가 설렁탕 전문점 '삼강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곽현숙(오른쪽) '아벨서점' 대표와 권은숙 '나비날다' 서점 대표가 설렁탕 전문점 '삼강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드러운 우설·고소한 도가니 … '그 집'의 추천메뉴는

 

●설렁탕·해장국

설렁탕은 지난해 인천도시역사관 '인천사람의 10대 소울푸드'에 선정됐으며 삼강옥의 대표 메뉴다. 사골과 머리고기를 우려서 국물을 내는데 거품은 자주 걷어내고 생강, 파, 마늘 등을 넣어 누린내를 잡는다.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뜨끈한 설렁탕에 밥 한공기 말아 깍두기 한입 베어물면 쌀쌀해진 날씨는 어느새 잊어버린다.

해장국은 큼직한 살코기가 붙어 있는 뼈와 우거지와 송송 썰은 대파가 듬뿍 얹어서 나온다. 취향에 따라 양념다대기를 넣으면 칼칼하고 얼큰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수육

십정동 축산물도매시장에서 떼어오는 머리고기 뽈살을 삶아 내는 수육에 함께 나오는 우설은 한우만 쓴다. 양념간장에 찍어 먹거나 시큼한 무채와 함께 먹어도 그만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지만 느끼함이 돌 때는 쌈배추에 마늘과 고추를 된장에 찍어 수육이나 우설 한 점 올려 싸먹으면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기름부위도 적당히 섞여서 부들부들하고 전혀 퍽퍽하지 않고 입에 착착 감긴다. 수육이 조금 식을 때 쯤 되면 설렁탕 국물에 한 번 척 담근 뒤 먹으면 된다.

 

●도가니무침

푹 삶은 도가니를 간장, 소금, 후추, 참기름, 간마늘과 파를 썰어 넣어 무치는데 특히 도가니탕은 도가니를 자르지 않고 끓이고 도가니 무침은 잘라서 무친다.

도가니는 칼슘과 콜라겐 등의 성분이 뼈와 피부의 노화를 방지해주고 세포 재생 및 활성화, 면역 증진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수술회복기 환자나 여성에게도 좋다.

동물성의 고소한 풍미와 물컹거리는 촉감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입 안에서 씹힐 듯 하다 스르르 녹아드는 기막힌 맛으로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안주다.

▲ 삼강옥의 초기 모습. 루핑지붕의 단층건물로 미닫이 출입문 앞에 음식을 적은 천이 눈에 띄고 김주숙 사장의 시어머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삼강옥의 초기 모습. 루핑지붕의 단층건물로 미닫이 출입문 앞에 음식을 적은 천이 눈에 띄고 김주숙 사장의 시어머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46년 '설농탕'의 추억 … 3대째 지켜가는 중


"시아버님 고향인 황해도 개성 부근의 홍현이란 동네에 '삼강'으로 불리는 강이 있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게 이름을 '삼강옥'이라 지었데요."

인천 배다리에서 경동 싸리재 고개로 올라가는 도로 오른쪽 첫번째 골목 안에 설렁탕, 수육, 도가니무침 등으로 유명한 삼강옥은 1대 박재황 사장이 1946년 문을 연 이래 며느리인 2대 김주숙 사장에 이어 올해 어머니로부터 가게 운영을 물려받은 3대 박영수 사장까지 70년 넘도록 전통의 맛을 지키고 있다.

"시아버님이 개성에서 설렁탕, 곰탕과 함께 장국밥집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동인천역 근처에서 하시다 이 자리로 옮겨서 몇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의 3층 건물로 바뀌었어요."

김주숙 사장은 원래 인천사범학교를 나와 15년간 교편을 잡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70년대 초에 시아버지 건강이 나빠져서 1973년부터 삼강옥을 물려받았다. 지금은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으로 옮겼지만 당시에는 채미전이라고 불리던 참외전 '깡시장'에서 새벽부터 야채, 과일 등을 파는 경매가 있어 사람들과 돈이 넘쳐났다.

"그 때는 신천리나 서곶에서 달구지로 채소, 과일 등을 싣고 와서 새벽 4시에 깡을 부르고 경매를 해서 넘긴뒤 우리 집에 와서 해장국을 먹고 돌아갔지요. 화교들도 많아서 몇 년 전까지 4대가 함께 와서 먹었는데 지금은 1세대들은 다 돌아가시고 자손들은 대부분 대만으로 이주했데요. 지금도 아침 손님들이 있어서 7시에는 문을 열어요."

70년 넘게 운영하다보니 역대 인천시장은 물론, 지역의 유지나 원로, 유명인사들은 모두 다녀갔다.

"연로하신 분들은 병원에 입원한 뒤 퇴원할 때 꼭 다녀가시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가족들에게 설렁탕 심부름을 시켜요. 심부름이 끊어지면 돌아가신 거죠. 이영호 박사님이라고 경동에서 이비인후과 원장이고 인천적십자협회 회장이셨던 분인데 오후 3시쯤 설렁탕 드시고 가셨는데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어려운 고비도 많이 넘겼다. '깡시장'이 옮겨가고 IMF도 겪고 뷔페나 웨딩홀 등이 생기며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기도 했다.

"예전에 동인천을 중심으로 상권이 살아있고 돈이 돌던 때는 은행 지점장들 몇몇이 점심이면 여기서 만났어요. 드럼통에 연탄불로 구워 먹는 불갈비에 설렁탕, 갈비탕이 최고였지요. 인천고교 야구부 선수들도 자주 회식을 했어요. 돌·환갑잔치는 물론이고 주말에는 예식손님, 졸업시즌에는 가족단위 손님들 예약이 밀려들었지요. 하지만 가든, 웨딩홀, 뷔페가 생긴 뒤로 갈비는 안 하게 됐어요."

김주숙 사장은 그동안 인천시어머니배구단장, 인천시여성단체협의회장, 재향군인 여성회장 등 사회활동도 많이 했다. 인천시체육회 이사는 4번 연임으로 16년동안 역임했다. 45년간 일해온 삼강옥에서 지난해 '은퇴'한 김주숙 사장이 숱한 어려움과 신도시나 번화한 곳으로 이전 유혹을 뿌리치며 한자리를 지켜온데는 남다른 신념과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사범학교 때 배구선수였어요. 30대에 어머니배구단을 이끌고 일본에 원정경기를 하러 갔는데 6~7대를 이어 장사하는 우동집, 이발소, 여관 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삼강옥도 대를 이어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지금도 외국으로 이민간 사람이 20~30년만에 와서 이곳을 지키고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나 할아버지부터 아들, 손자까지 3대가 같이오는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2층에는 단체 손님을 위한 방도 있고 자체주차장에 20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다. 032-772-7885


헌책방 대표들 "세월과 사람의 '흔적'이 가득한 배다리"


"30년쯤 전에 서점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이웃에 사는 5살된 조그만 아이가 와서 '있잖아요, 책에는 없는게 없이 모든게 다 있데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맑게 들리는지 하늘에서 내려온 소리 같았어요. 그날은 몸이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 책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뭔가 새로운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와 '나비날다 서점' 권은숙 대표가 경인선 전철 굴다리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 골목 안에 있는 설렁탕 전문점 '삼강옥'에서 만났다.

곽 대표는 1973년 11월부터 45년동안 아벨서점을 운영해온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산증인이자 수호신이다.

"성경의 '카인과 아벨'에서 서점이름을 지었어요. 성서적으로 '몸은 죽었는데 계속 기억되는, 사랑이 흐르는 길'이란 뜻이에요. 처음에는 창영교회사회복지관 건너편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어요. 1996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까지 여섯차례 이사를 했는데 세월이 흐르는 만큼 책이 늘어 창고에 있는 책까지 합치면 10만권정도 돼요. 2007년 11월부터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시낭송회도 120회가 지났으니 12년 넘게 지속해온 셈이네요."

책방 안에 있으면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곽 대표는 송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6살때부터 책 월부장사를 하며 책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장남 또는 장녀가 동생들을 위해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희생하는게 일반적인 일이었지요. 그때부터 헌책방을 알게 됐는데 책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지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그러면서 책에 빠져 살았지요. 알고 싶은 걸 찾고, 내 시간을 갖고 싶은데 새 책방을 할 여력은 없어서 헌책방을 하게 됐죠. 책은 나와 너를 떨어지지 않고 붙여주는 아교같은 역할을 하지요."

권 대표는 인천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뒤 서울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다 문득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 배다리라는 생각이 들어 2009년 서점이자 문화공간인 '나비날다'를 열었다.

"무작정 곽 대표님을 찾아갔어요. '제가 이런 재능과 계획이 있고 이런걸 해보고 싶은데 사실 공간을 얻을 돈도 없고 세를 낼 여력도 없다'고 하니까 '그럼 한번 써봐라'하면서 작은 가게를 얻어주셨지요."

'나비날다'는 '나눔과 비움, 오래된 책집에 날아들다'란 뜻이다. 권 대표는 그렇게 책을 매개로 헌책방거리의 특색을 살리는 문화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마을이 들여다 보이고 마을에서 필요한걸 알게 되면서 지금은 영어 원서읽기, 번역 수업, 시와 소설 쓰기 등 인문학 강좌가 자리잡게 됐죠. 이곳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돈 없이도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시도하기 좋은 곳이고 중장년층은 개성있고 전문적인 책방을 운영할 수도 있는 기회의 공간이기도 해요."

'배다리 관통도로'는 인천 원도심 현안 해결의 상징처럼 됐다. 도로 개통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천막농성이 410일을 넘게 이어오면서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역에도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남춘 시장 취임후에 주민대표와 시·구, 전문가 등으로 민관협의회가 구성돼 그나마 대화의 장은 마련됐지요. 배다리는 세월과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에요. 그런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도로를 낸다는건 이해할 수 없어요. 진짜 필요한 도로라면 지하화로 해서 이곳의 역사와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게 주민들의 생각이지요. 사람이 없는 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배다리에는 한 때 20여곳의 헌책방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 1~2년 지난 참고서를 사러 오던 곳이었고, 대학생들은 비싼 교재를 대신할 헌책을 찾던 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6곳 정도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인천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한번쯤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배다리는 그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의 탄탄한 기운을 닮아가고 싶은 매력이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헌책방은 오래된 책방, 오래 있어온 책들의 방이지요. 삼강옥 설렁탕은 오래전부터 냄비들고 가서 사갖고 와서 책방에서 데워먹곤 했어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