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기타연주자
류재은 제과제빵 기능장
▲ 조성욱 기타 연주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조성욱 기타연주자
통기타로 들려주는 '국악의 참맛' … 화음 한가락에 입맛 살아나고 

통기타와 가야금,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한 쌍이 빚어낸 황홀한 현악 연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묵은 때까지 씻겨 내린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우리 음악의 재발견이 내심 반갑다. 우리 음악을 알리기 위해 소매를 걷어 붙인 청년들, 이름조차 생소한 국악 크리에이터 '등잔 밑 스튜디오'의 조성욱 기타연주자를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기타 등등 자기 계발서에 의존적이죠. 누군가의 정의에 스스로 갇히지 마세요. 남의 정의에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됩니다."

6평 남짓의 작은 스튜디오 밖으로 커피 향이 새어 나온다. 수동 그라인더로 직접 원두를 갈아 청년의 손에 만들어진 커피 맛은 전문 바리스타 못지않게 수준급이다. 그가 내려준 커피와 그들이 들려준 '돈 맥클린'의 '빈센트', 기타와 가야금의 환상적인 콜라보는 커피의 맛을 더했다.

조성욱 연주자는 이선경 가야금 연주자와 함께 국악 연주 버스킹 유튜브 채널 '등잔 밑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타악, 해금, 기타로 구성된 창작 국악팀 '넋넋'에서 기타연주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국악 사랑은 남다르다. 젊은이들이 등진 음악으로 치부되던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국악 전도사를 자처한 '보기 드문' 청년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국악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세계 각지를 돌며 버스킹 공연을 하면서 K-POP의 인기를 실감했고, 우리 한국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국악과 접목해 소개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노력은 보란 듯이, 전국 유일의 대학생 국악 경연 대회인 대학국악제에서 대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씨름판에서 천하장사를 겨루는 모습을 모티브 삼아 해금과 통기타가 경합을 벌이는 장면으로 표현한 곡 '천하장사'가 큰 호평을 받으며 최고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조 연주자가 처음부터 국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파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유년 시절부터 해오던 피아노 연주를 밑천으로 대학에서도 작곡을 전공하게 됐다.
그러다 돌연 제과제빵 공부를 하기 위해 통기타 하나 둘러메고 호주 유학을 떠났다. 조 연주자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파란 눈의 관객들이 모인 낯선 이국땅에서 기타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무명의 동양인 버스커는 1000일간 45개국 버스킹 무대에 오르게 된다.

"호주의 한 양로원에서 했던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몸이 편찮은 노인 분에게 저의 연주가 작지만 위로가 되길 바랐고 마음이 통했는지 낯선 동양 청년에게 따듯한 포옹으로 화답해 주셨죠. 음악을 하며 처음으로 갖게 된 보람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귀국 후 그는 지난 1000일간의 여행 기록들을 담은 저서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을 출간하고 작가로도 활동해 오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느꼈던 우리 음악의 반응들, 꾸밈없는 진솔한 얘기들을 담고 싶었죠. 사실 도중에 카메라와 전자기기들을 몽땅 도둑맞으면서 기록할 장비가 없어 수기로 써 내려간 기록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버스킹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최근 조 연주자는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무대에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지역 청소년 100명이 모인 뜻깊은 자리에서 조 연주자가 걸어온 인생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늘어 놓은 것이 큰 호응을 얻었다.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험난한 과정일 수 있죠. 혹자는 이렇게 얘기하죠. 예술을 하면 밥이 나오냐. 누군가 이렇게 답했죠. 밥이 나오진 않지만 밥맛이 좋아지더라고."

#해시태그 토크
#무명의 버스커 #겁없는 국악작곡가 #향기
전통이라는 것이 보존에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겁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조성욱만의 향기 있는 음악, 향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향기를 키워드로 꼽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류재은 제과제빵 기능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 류재은 제과제빵 기능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류재은 제과제빵 기능장
그가 구워낸 원조 마늘빵처럼 … 오늘도 '장인의 연구'는 부풀어올라

언제부터인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동네 빵집'의 자리들은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 차지가 돼버렸다. 어딜 가도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완성된 천편일률적인 빵들은 입맛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등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맥이 끊기나 싶었던 동네 빵집들이 다시 고개 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동네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 여행, 일명 빵지순례(빵+성지순례)가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지역 대표 빵들의 인기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동네 빵집의 선두 주자, 파주 지역의 명물, 마늘빵의 원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제빵 기능장 류재은 기능장(51)을 마늘빵 향기 가득한 그의 베이커리에서 만났다.

"정답은 고객입니다. 고객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항상 새겨듣는 것이 저희 류재은베이커리 빵의 저력입니다."

프로방스 마을 초입부터 마늘빵 굽는 냄새가 허기진 배를 자극했다. 파주시의 특산품 하면 장단콩보다 단연 마늘빵을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파주 시장님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사람은 안다고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제빵 기능장 류재은 기능장은 연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연 매출 30억, 지점 만해도 6개 지점, 기업형 빵집으로 성장한 류재은베이커리지만 아직도 현역에서 빵을 굽는 류 기능장의 모습에서 그의 남다른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

"아직도 현역에서 제빵 과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손을 놓아도 품질에 차이가 생겨나기 때문에 규모가 점점 커가고는 있지만 베이커리 역시 모두 직영점으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류재은베이커리의 마늘빵은 1만여개 이상이 팔려나간다. 마늘빵의 원조라는 수식어답게 류 기능장의 마늘빵은 전국 제일의 마늘빵으로 손꼽힌다.

"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는 재료 선정에 있습니다. 류재은베이커리 마늘빵은 의성에서 직접 공수한 마늘을 사용하고 밀가루 또한 특별 주문 제작을 통해 만들어진 밀가루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맛의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늘빵 장인으로 불리는 류 기능장이 처음부터 제빵사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년 시절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숙식을 제공해 준다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였던 제빵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9살 되던 해 상경 길에 올라 처음으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세계 최고의 베이커리 대회인 독일 베이커리 월드컵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동메달을 목에 걸며 대한민국 최초 수상자의 영예를 안게 됐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많은 한국 제빵사들이 빵의 본거지에서 우수한 한국의 제빵 기술을 알리고들 있지만 당시 선진국들의 전유물 같던 제빵 기술, 제빵의 불모지에서 얻어 낸 메달은 어느 메달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후배들이 더 잘하죠(웃음). 출전할 당시만 해도 환경과 조건이 매우 열악했어요. 제과 선진국들이 준비해 온 도구에서부터 차이가 컸죠. 하지만 전략적으로 심사위원 입맛에 맞춘 프랑스 정통의 빵을 화려한 모양새를 갖춰 만들어 낸 것이 큰 가산 요인이 됐던 것 같습니다.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곤 합니다. 경쟁자들의 오븐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연구, 노력만이 우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류 기능장은 독창적인 빵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들을 한결같이 해오고 있다.

"나만의 독특한 빵을 만들자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조금 더 색다른 재료, 조금 더 색다른 모양의 빵을 만들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에게 파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맛있게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해시태그 토크
#고집이 센 장인 #마늘빵 #독창적인 연구 개발
훗날 백발성성한 노인이 파주 어디 저편에서 고집스럽게 빵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빵사가 천직이라 생각하고 소명 다할 때까지 빵을 굽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