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30여년 전 울산은 이 나라 첫 '노동자 대투쟁'의 성지였다. 그 태풍의 눈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있었다. 두 기업의 임단협 투쟁은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특히 현대중공업 노조의 골리앗 크레인 투쟁은 외국에까지 유명세를 떨쳤다.
울산의 현대분규가 막을 올리면 서울의 노동담당 기자들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길게는 한 달여까지 바닷바람 드센 울산에서 진을 쳐야 해서다. '공권력 투입'의 D데이 H아워가 최대의 특종감이 되던 시절이다. 파업을 이끈 노조위원장들은 정치인 이상의 유명세를 탔다. 국민들도 '억눌린 자들의 이유있는 항거'쯤으로 받아들이던 대투쟁 시대였다.
▶당시 현장에서 이상범 현대차 노조위원장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장기 분규가 마무리된 즈음이었다. 투쟁을 마친 소감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 호랑이 등에 올라 탄 느낌"이라고 했다. 노조 간부들이면 '무한 투쟁'만 부르짖던 시기다. 노사간 윈윈을 지향하는 합리적 운동의 싹을 보는 느낌었다.
▶그런 이 전 위원장이 지난해 논란에 휘말렸다. "현대차 노조는 회사가 망해 봐야 정신 차릴텐가." "누구도 국내에 공장을 더 세우고 싶지는 않을 것." 체코, 러시아 등의 현대차 공장을 돌아본 뒤 피력한 소감이다. 반응이 크게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배신자", 다른 쪽에서는 "소신형 쓴 소리"라고 했다.
▶지난 주 현대차 노조가 또 총파업 카드를 꺼냈다. 회사가 광주형 일자리 투자에 참여할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거다. 광주형 일자리란 현재 7000만∼9000만원 수준인 현대차 생산직 연봉의 반값 수준인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려는 노력이다. 광주광역시가 지역내 청년들을 위해 추진하는 파격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이다.
▶현대차 노조는 현대차가 광주에 투자를 하면 '정경유착'이라고 비난했다. 과연 이런 데 써도 되는 말인가 모르겠다. 정치권과 재계가 더 큰 이익을 놓고 뇌물을 주고 받는 게 정경유착 아닌가. 고육지책격의 청년 일자리 창출이 정경유착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언론들이 함부로 받아 적는 '총파업'도 그렇다. 제네럴 스트라이크는 총노동자가 공통 요구를 내걸고 통일적으로 참여하는 파업이다. 이를테면 3·1 운동 당시 시장마다 철시를 단행한 정도를 말한다. 겨우 청년 일자리 훼방을 위한 파업은 '그냥의 파업'일 뿐이다. '현대차 노조가 내 아들 일자리는 세습시키려 하고 남의 아들들 일자리는 극구 가로 막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대기업 귀족 노조들은 언제라야 30년 전의 뜨거운 '초심'으로 돌아 갈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