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역사 간직한 채 새 시대 소통의 장 거듭나다

▲ DMZ의 옛 미군기지였던 파주 캠프 그리브스는 문화재생을 통해 평화·생태·문화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공간이다. 군사기지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캠프 그리브스의 재생은 전쟁과 냉전의 상징인 DMZ를 생명이 넘치는 희망의 땅으로 되살려 내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는 전쟁의 시간이 담긴 아픔의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 DMZ는 분단의 역사와 다가올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미군이 떠난 이후 반환공여구역이라 불리는 반환대상 미군기지가 생겨나면서 이들 유휴공간들이 사회기반시설이나 교육 및 문화관광시설 등으로 재생되고 있다.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정 체결(LPP, Land Partnership Plan)에 따른 국내 반환대상 미군기지는 80개소에 이른다. 반세기 동안 미군이 주둔했기에 미군의 흔적과 분단의 현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다. 민간인 통제구역 내,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 떨어진 유일한 미군 반환지이다.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적십자로 137 일원에 있다. 통일촌 마을이 지척이다. 1953년 7월 미군기지로 공여되고 2004년 8월 철수할 때까지 50여년 간 미군이 주둔했던 공간이다. 미군이 떠나도 유휴지로 남아있던 캠프 그리브스가 문화재생을 통해 평화·생태·문화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억과 기다림'이라는 대주제의 문화재생 사업을 통해서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군의 건축양식이 축적된 퀀셋막사와 탄약고 등 36개의 시설물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 이 중 12개 동이 리뉴얼 후 숙박시설과 전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군 숙소는 체험형 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로, 탄약고 등은 전시관과 창작공간으로 바뀌었다.

캠프 그리브스는 DMZ 역사의 하나의 표상이다. 미군이 주둔했던 아픔의 땅이 이제 단절의 역사를 넘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세계평화를 노래하는 발신지이며,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미군기지의 문화재생은 아픈 기억과 상처의 회복을 통해 평화로 향하는 동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장소성을 구축해 내고 있다.
기자는 지난 10월 19일 임진강을 건너는 파주 민간인통제구역인 통일대교를 건넜다. 검문을 받고 직진하다보면 만나는 통일촌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1.2㎞를 더 들어가자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가 나왔다. 이곳이 문화를 통해 어떻게 변화,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DMZ 미군기지의 문화재생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는 2007년 기지 반환이 이뤄진다. 이후 활용 방안을 놓고 관계기관마다 서로 다른 방안을 제시한다. 당초 국방부는 캠프 그리브스가 군사작전시설인 만큼 군사시설로 사용하기를 원한다. 반면 50여년간 미군주둔으로 지역발전에 어려움을 겪은 파주시와 경기도는 남북 및 국제문화예술교류협력단지로 활용할 것으로 제안한다. 그리고 시민단체는 원형보존을 건의한다. 결국 5년간의 논의 끝에 2013년 경기도와 1사단, 파주시, 경기관광공사는 원형보존 원칙을 바탕으로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2013년 12월 장교숙소로 사용한 건물을 활용해서 병영체험시설인 유스호스텔을 개관,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파주 캠프 그리브스는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그 변화를 본격 시작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2015년~2016년까지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연차적 문화재생 사업에 들어간다. 문화재생사업의 기본 방향은 공간의 장소성을 세우고 캠프 내에 있는 다양한 건물과 구역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2016년 6월 캠프 그리브스 역사공원 조성계획 승인을 고시한데 이어 9월에는 문화재생사업 추진에 따른 실시설계와 시공을 마치고 1차 전시회를 갖는다. 이후 캠프 그리브스는 '역사의 보존, 문화공간 조성, 생태자원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기본 취지에 맞춰 문화재생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야기 담긴 공간의 정체성 찾기

캠프 그리브스는 이야기와 희소성이 있는 공간이다. 'DMZ에서 하룻밤'이라는 낭만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민간인 통제구역 내 유일한 대중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이 있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요 촬영지이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모델인 101공수 506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캠프 그리브스는 '한국전쟁의 한 자락을 함께 한 곳이고 그에 대한 기억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다양한 국적의 UN군, 미국군, 한국인 근무자들과 지역주민 등 공간을 거쳐간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진 곳이다.

남아 있는 건물 자체가 근현대 건축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형자산이다. 과거 미군이 사용하던 막사, 볼링장, 장교클럽 등에는 특유의 창틀, 안내표지, 건물모양이 남아있다. 일부 건물을 리모델링했지만 그 본래의 형태나 흔적은 여전하다. 또 정전이후 60여 년 이상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그대로 보존된 자연환경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다.

이러한 이야기와 희소성을 바탕으로 문화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해 나갔다. 캠프 그리브스 내 13개 공간을 문화재생 사업으로 리모델링 해서 새로운 플랫폼으로 세워 나갔다. 탄약고, 퀀셋막사, 조적조 건물, 2층 하사관 숙소, 볼링장 등 다양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에 세워진 유스호스텔과 함께 전체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이러한 변화를 알리고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두 차례의 파일럿 전시를 통해 캠프 그리브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올렸다.

#공간의 재구성 재생

캠프 그리브스 공간재생의 기본방향은 현재의 모습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며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건축물의 외형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브제로 역할을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모던한 공간으로 완성해 과거와 현재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수렴했다. 공간의 역사성은 형상으로 드러나지만 그 활용을 통해 새롭게 규정된다.

전체 면적 중 문화재생사업 구역도 기존에 사용되던 유스호스텔 등과 근접한 지역을 선정함으로써 활용도를 높였다. 산책로와 잔디밭 등 외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을 대상구역으로 선정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리모델링을 진행함으로써 향후 개발 예정인 공간들의 파일럿 작업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

캠프 그리브스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미군 건축양식이 축적된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기지의 주된 건축물은 텐트형 막사였다. 휴전협정 이후 미군이 본격적으로 주둔하면서 내구성이 강한 아연도금 골강판으로 제작되고, 조립과 철거 등이 쉬운 퀀셋막사를 짓기 시작했다. 퀀셋막사는 반원형의 긴 형태를 기본으로 병사들의 숙소와 사무실, 식당 등 사용 목적과 용도에 따라서 형태가 변형됐다. 이들 공간을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문화재생사업에서 선정된 재생공간은 유스호스텔과 근접해 활용도가 높고, 캠프 그리브스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 조성을 시작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공간 구성에서 길은 단순히 동선으로서 의미를넘어 그 공간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이해를 높이는 하나의 도구로 작동한다.

각각의 용도와 역할이 있는 건축물들은 새롭게 조성되는 공원의 미래모습을 준비함에 있어 아카이빙의 도구로 작동한다. 다양한 건축물의 형상을 그대로 남김으로써 과거의 모습은 기억된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리모델링이 진행되지 않은 많은 건축물을 통해 보여주고, 재생의 대상이 된 건축물들은 형태적 특징을 남긴 채 새롭게 규정된 공간의 성격에 맞게 리모델링했다. 이렇게 DMZ의 옛 미군기지는 전쟁과 냉전의 상징에서 생명이 넘치는 희망의 땅으로 되살아나,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변신했다.

/글·사진 이동화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전시공간 '다큐멘타관' 주한미군 흔적이 …

캠프 그리브스에 조성된 전시공간은 다큐멘타관(1관·2관·3관)과 기획전시관, 오픈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된다.
다큐멘타관은 미군이 사용했던 퀜셋막사를 리뉴얼한 전시관이다. 퀜셋막사는 비품실, 화장실 및 샤워실, 보일러실, 중대사무실, 저장고와 보급소 등으로 사용한 공간이었다. 이들 전시관은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과 주요 통계 숫자를 통해 한국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또 정전 이후 DMZ를 중심으로 주둔한 주한미군의 모습을 당시 영상과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획전시관은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의미와 역사의 가치를 담고 있는 다큐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DMZ 다큐시네마전'과 정전협정 이후 남북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은 '정전 65주넌 기념 NNSC' 사진전' 등 다양한 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다.
이들 캠프 그리브스 전시관에서는 2016년과 2017년에 이어 올해는 8월부터 10월까지 세번째 전시를 가졌다. 특히 올해는 캠프 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사업의 메인 행사인 예술창작 전시로 탄약고 프로젝트, 정비고 프로젝트, 미디어 프로젝트와 'DMZ 평화의 정원'으로 구성, 총 17개 작품을 선보였다.

/글·사진 이동화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