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 인사를 팔아 돈 요구하면 무조건 사기니 신고해 달라"는 발표를 내라고 했다. 사례도 내놓았다. 임종석 비서실장 팔아 3000만원, 한병도 정무수석 팔아 4억원, 이정도 총무비서관 팔아 1억원 등의 사기가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사기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파고 든다. 청와대 사칭은 사기꾼들의 특급 메뉴다. 이전에도 있어 왔지만 대통령 특별지시까지 가지는 않았다. 사기꾼들은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밝다. 요즘은 청와대 비서실이 가장 효험이 크다고 여기는 건가. 하기는 장관들 이름은 몰라도 청와대 비서는 다 아는 요즘이다.
▶흔히 비서를 일러 '그림자'라 한다. '승지(비서)는 입이 없다'도 예로부터 내려온 말이다. 모시는 주군을 가리지 않으려면 그림자라야 한다. 비서의 입이 요란하면 주군이 할 말 없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 그림자는 어느새 양지로 나와 있고 비서들마다 입이 너무 많다.
▶이 달 중순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DMZ내 지뢰제거 현장 방문에서다. 국정원장,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 등과 함께 간 자리였다. 모두 군복을 입고 철모를 썼다. 그런데 임 실장만이 썬글래스를 쓴 채 오른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장관들의 시선은 그 손끝에 모아져 있다. 기사에는 '동행'이라 했지만 사진을 봐서는 '수행'이었다. 25일자 신문들의 경제장관회의 사진에도 청와대 사회수석이 경제부총리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카메라가 비서들을 좋아하는지 비서들이 카메라를 좋아하는 건지.
▶청와대 수석이든 실장이든 본연은 비서다. 지난 8월 이런 비서 한 사람이 거창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비서의 기자회견은 낯설다. "모든 국민들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 저도 강남에 살기에 드리는 말씀."도 그 비서 입에서 나왔다.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다. 패러디가 쏟아졌다. "모두가 쇠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다. 내가 먹어봐서 드리는 말씀." "모두가 서울대 갈 필요는 없다. 내가 가봐서 드리는 말씀."
▶민정 비서실의 수장은 'SNS 정치'에 몰두한다. 최근에는 '재벌의 고위 인사에 아부 문자를 보낸 판사'라고 했다가 '지위 남용해 치사하게 겁박 말라'는 반격도 받았다. 마침내 '대통령의 위임이 없는 비서의 의견 표시는 헌법에 반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문제는 이 같은 비서들의 '나서기'와 '입'이 결국 대통령을 가리고,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