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장 지음, 창비교육, 296쪽, 1만2000원


이책은 저자가 문학관 11곳(윤동주, 김수영, 유치환, 신동엽, 박인환, 김병연, 조병화, 신석정, 서정주, 오장환, 정지용), 생가 3곳(신석정, 정지용, 김남주) 외에 묘소, 자료실, 기념관, 시비 등을 방문하며 쓴 글을 모았으며, 직접 찍은 현장 사진도 담았다. 또 서예가이기도 한 저자는 캘리그래피로 각 시인을 대표하는 시구를 적었다. 각 편의 시작을 장식하는 다양한 글씨는 시를 읽는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 책에는 문학관에 가는 방법이나 주변의 맛집 정보는 나타나 있지 않다. 지금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정보가 되지 못하는, 이른바 유비쿼터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에는 기행의 공간과 풍경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과 사유를 기록했다.

시만 읽어서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차원의 서정을 시인의 집과 마을, 문학관을 거니는 여정 속에서 발견하고 있다. 독자도 이 책을 읽으면서 김성장 시인의 여행에 동참한 듯이 그가 방문한 장소를 머릿속에 그려 보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3 전시실은 입구부터가 특이했다. 군데군데 녹슨 철문이 왠지 서늘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물 얼룩이 남아 있는 시멘트 벽 위로 영상을 뿌리는데, 마치 상처 입은 배경에 윤동주의 삶을 보여 주면서 시대의 흔적과 관람자를 대면케 하려는 것 같았다. 집을 오직 생존과 주거의 공간으로만 인식해 온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건축물 자체를 서정과 서사의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 들어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흔드는 것, 그것이 현대 건축의 힘인가 싶다.'('열린 하늘이 보이는 윤동주의 집' 중에서, 74쪽)

이 책에서 시인의 문학관, 생가, 묘소 등은 고정된 과거의 건축물이 아니라, 저자의 여정을 따라 생동하는 현재의 공간이다. 저자는 문학관에 소장된 자료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무엇이 모여 문학관을 이루었는지를 설명하였고, 건축물의 구조와 시비의 위치가 가지는 의미까지 분석했다. 생가를 방문했을 때에도 모습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의 풍경이 어떻게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이루었는지를 함께 탐구했다. 저자의 눈에 시인의 생가와 마을은 시를 낳은 집이고, 문학관과 묘소는 시로 만든 집이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