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홍콩 빈민가에서 태어난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63)이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해 화제다. 홍콩 누와르 영화의 전성기를 열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세계적 스타로서 평생 모은 약 8100억원(56억 홍콩달러)을 기부단체와 활동에 내놓기로 했다.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으로 익숙할 뿐 아니라 그가 스크린을 압도하는 모습은 한국 팬들의 우상처럼 여겨졌다. 최근 홍콩 영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전 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한 달 용돈으로 12만원(800 홍콩달러) 정도를 쓰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검소한 생활 자체가 인생철학이다. 그런 근면한 생활, '보통 사람'을 꿈꾸는 일상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감동 실화다. 졸부들이 쪽박을 차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영웅본색'은 '걸출한 인물의 본래 모습'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영웅의 이미지를 만든 주인공처럼 주윤발은 현실 속 영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위조 달러로 담뱃불을 붙이던 검은 선글라스의 중년, 이쑤시개 대신 성냥개비를 문 주윤발의 연출은 불량한 듯 인간미를 풍기는 트레이드 마크였다.

주윤발을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린 '영웅본색' 첫 편은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1986년 작품이다. 강호의 우정과 의리, 배신과 복수의 암흑사회를 넘나들었던 영웅주의를 통해 중국 반환을 앞둔 화려한 홍콩의 불안을 타고 홍콩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부호들의 평범한 삶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도덕과 윤리가 세상의 밝은 빛을 만들어내는 근간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산을 지닌 세계 기부왕들의 보통 일상이 이따금 언론에 소개됐다. 자건거 혹은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출장 비행기석은 이코노미를 고집한다. 소형차를 직접 운전하고, 햄버거 모닝세트를 주문하는 습관은 보통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주변에도 연예인 기부천사들이 꽤 많다. 또 어려운 환경에서 이룬 소소한 재산을 사회에 남기고 생을 정리하는 '김밥 할머니'의 선행은 감동의 선물이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슈퍼리치'는 증가한다. 고액기부자들은 기부를 선택이 아닌 의무로 인식함으로써 엘리트 지위의 상징으로 남길 바란다. 하지만 재벌 가족들의 사익추구와 무소불위의 갑질 비리는 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언제 존경을 받는 부호의 반열에 오를 것인가. 주윤발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