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나는 섬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늘 내가 달려가지 못하는 다른 세상을 탐하곤 했다. 마당에 앉아 바다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다른 섬들을 보면, 그저 마냥 부러웠다. '너희들은 참 좋겠다. 넓은 바다를 떠다니는 자유로운 여행자구나.'
잠시 후 썰물에 물이 빠져나간 바다에 앉아 그 섬들을 보고 알아차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자유로워 보였을 뿐, 저들도 결국 커다란 대지 위 하나의 돌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쩌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내 자신과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얼마 전엔 바닷가에 힘없이 앉아 있는 나를 지켜보던 노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젊은 놈이 뭐하는데 얼굴을 찡그렸노?" "예. 저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데요. 넓은 세상에 나가서 못 다한 미술공부와 철학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버럭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네가 살고 있는 이곳이 그림이고 철학인데 어딜 가서 스승을 만나겠다는 거냐!"

다짜고짜 화를 내시는 바람에 매우 놀랐다. 노인이 떠난 바닷가에 앉아 다시 섬들을 바라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섬들이 수천 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유가 있었겠지. 세상 어디에든 그들만의 '리그'는 있는 법이니까. 내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즐겁게 살아가는 것. 아마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