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형 인천대 디자인학부 교수

 

뱅크시(Banksy)라는 저명한 영국의 현대 예술가가 있다. 신상에 대한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으며 절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작품 역시 그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나서야 그가 만든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작품 활동을 한다. 예술계에서는 이미 꽤나 유명한 그가 얼마 전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그림을 원격으로 파손한 충격적인 일로 화제에 올랐다.

뱅크시가 그린 '풍선을 든 소녀'라는 제목의 그림이 액자에 넣어진 상태로 소더비 경매에 올라왔고, 그림은 120만달러라는 거액에 낙찰되었다. 바로 그 순간 뱅크시가 액자 안에 미리 설치한 파쇄장치가 작동했고 그림의 절반이 잘려나가 버렸다. 그림이 파손된 직후 검은 옷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경매장을 나가는 것이 목격되어 뱅크시 본인이 경매 과정을 지켜보다가 자기 작품이 낙찰되는 순간 리모콘을 사용하여 원격으로 그림을 파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뱅크시는 그림을 파손한 다음 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2년 전에 그 작품을 만들 당시 액자 안에 파쇄장치를 설치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올려 그것이 애초부터 계획된 일임을 알렸다.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는 뱅크시에게 걸맞은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 경매에 나온 자기 작품을 파손한 뱅크시의 의도는 그 작품을 파손함으로써 예술이 시장의 부속품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의 작품에 가격표를 붙이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순수하게 학문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술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창조(Creation) 자체에 있다. 작가의 순수한 예술혼을 통해 예술적 의미를 지닌 작품을 창조하는 활동 자체에 예술의 목적을 두는 것이다. 거기에는 경제성이라거나 사회적 계몽 등 창조 이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이 좋은 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생계 유지나 예술을 통한 사회 부조리 고발, 종교적인 이유, 대중 계몽 등의 목적과 관련하여 많은 예술가는 금전적인 면에서 예술과 사회 간 관계 유지를 해 왔다.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살 수 없기 때문에 고전 시대부터 많은 유명한 예술가는 궁정이나 귀족 가문 소속으로 급여를 받아 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고 부유한 후원자들에게 선금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는 상업적인 면과 결합된 미술이 디자인이라는 분야로 확실하게 독립되어 나갔고, 순수미술 분야 역시 잘 팔리는 예술 작품을 원하는 산업 사회 요구에 따라 환경조각이나 인테리어에 알맞은 작품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유명한 추상화가인 잭슨 폴록의 작품들은 액션 페인팅이라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크기가 굉장히 컸는데, 그 크기 때문에 당시 고층빌딩의 큰 벽면에 인테리어용으로 걸어놓을 그림이 부족했던 미국의 갑부들에게 인기를 얻어 그의 유명세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대 예술사에서 잘 알려진 예술가 중 한 사람인 앤디 워홀은 아예 예술과 비즈니스를 동일시하여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고 훌륭한 사업은 가장 뛰어난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고 엄청난 부를 쌓은 앤디 워홀이라고는 해도 생전에는 쇼핑중독이었고, 사후에 집 창고를 살펴봤더니 명품 박스로 가득 찬 열어보지도 않고 버려둔 쇼핑백이 몇 백개나 나왔다고 한다. 잭슨 폴록 역시 작품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다가 알콜중독에 걸렸고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걸 보면 물질만으로는 예술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것들을 본다면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 작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데 반대한 뱅크시는 예술계에서 독특한 존재임에는 틀림 없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뱅크시의 퍼포먼스가 일어난 직후 반쯤 파손된 작품의 가격이 오히려 더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는 점이다. 작품 이력에 이번 퍼포먼스까지를 포함한다면 그 자체로 현대 예술사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져 그림의 가치가 대폭 올라갈 수도 있다. 실제로 해당 그림의 경매 낙찰자는 포기하지 않고 예정대로 파손된 그림을 낙찰 받을 것으로 알려졌고, 파손 정도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전시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뱅크시의 퍼포먼스는 본래 의도와는 반대로 그림의 몸값을 더 높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시장의 논리가 예술을 지배하게 된 현대에 자신의 예술품에 가격표를 붙이기를 거부한 뱅크시의 퍼포먼스지만, 그 결과가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