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간 풍물놀이 동아리
자연스럽게 나만의 흥 찾게돼
4~5명 함께 놀다 '유흥' 창단
'전통-젊음 조화' 무기로 질주
▲ 35살 양태양은 전통예술원 '유흥'의 대표다. 고교 때 풍물놀이를 처음 접했고,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던 중 흥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유흥'을 결성했다. 그리고 유흥은 상당한 실력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고, 세계에서는 우리나라 풍물의 흥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 남사당놀이 중 버나놀이를 재해석한 '뱅뱅뱅'

쭉 이어온 우리 가락, 춤사위. 내 몸 어딘가 흐르고 있을 장단을 자꾸 잊는 것은 남의 것에 대한 동경에 애써 뒤켠으로 밀어넣으려는 무지 탓일까. 양태양(35)을 만나며 자꾸 고개가 숙여지는 창피함이란.

양태양은 20년 가까이 풍물을 하고 있다. 장구를 두르고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허물며 종횡무진하는 모습은, 프로를 향한 집념과 나와 악기의 구분이 사라진 혼이 깃든 모습마저 엿보인다. 양태양이 풍물을 처음 접한 십대의 모습은 어땠을까. 풍물로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질주는 어떻게 표현될까. 우리가 양태양을 놓친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한민족의 정서가 녹아있는 풍물이 자칫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무대는 넓고도 좁다. 누군가는 무대 위 거인이 돼 관객을 휘어잡지만, 무대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면 공연은 겉돈다.

양태양에게 무대는 좁다. 공연 때 발산하는 거친 호흡은 더 이상 무대와 관객석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사자후를 터뜨린다. 8도 곳곳 양태양의 족적은 깊고, 5대양6대주에서는 양태양의 풍물 놀이에 매료된다. 그리고 양태양과 함께 호흡하는 전통예술원 '유흥(有興·흥이 있다)'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의 무대, 다음의 공연, 다음의 관객을 준비하고 있다.

# '풍물의 늪'을 만난 10대 소년

부평은 흥이 깃든 곳이다. 부평은, 이름 그대로 널찍한 땅에서 산물이 쏟아졌다. 이곳 노동요에는 희노애락이 담겼고, 부평 주민의 핏속에는 흥의 유전자가 녹아 있다. 그 곳에서 양태양이 나고 자랐다면 머리가 아닌 몸에 흥이 깃들어졌음은 당연하다.

평범한 소년, 양태양은 풍물을 몰랐다. 우리 가락은 몸에 흐르지만 여느 또래처럼 풍물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놀았죠. 그러다 실업계 고교를 갔는데 그게 이렇게 인생의 길이 됐네요."

양태양은 초·중학교를 부평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를 남구 운산공업고교(현 도화기계공고)에 진학했다. 동네 친구녀석이 학교 풍물패에 가입한다길래 따라갔다. 학교 끝나고 혼자 집에 가기 싫다는 게 풍물패에 첫발을 내딛은 이유였다.

기대와 각오가 없이 가입한 동아리 풍물패는 양태양에게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풍물을 체득했고, 무대에 설 체력을 기르기 위한 선배들의 혹독한(?) 체력 훈련은 거셌다.

'이겨낼 수 있을까'. 포기하고 또래처럼 편한 길을 걷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풍물패 선배들이 국악 관련 대학에 진학하는 모습은 양태양에게 도전이라는 목표를 심어줬다. 그 때 인천 풍물패의 거두, 노종선 인천풍물연구보존회장을 만났다.

노 회장의 개인 연습실에서 체계적인 인천 풍물의 흥을 익혔고, 우리 가락을 배웠다. 양태양은 "노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신 게 풍물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자 의미였습니다"라며 "지금도 노 선생님과 무대에 오를 때마다 박차오르는 감정은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쑥쑥 실력은 커갔고, 양태양의 풍물 도전에 가능성이 열렸다. 그리고 대학에 갔다. 서울예술대학교, 양태양은 그 곳에서 풍물의 넓은 세상과 첫 조우했다. 고교 풍물패와는 다른 무대와 관객, 그리고 동기들의 프로정신. 양태양에게 풍물이 인생의 길이 된 것이다.

양태양은 군대 역시 국악대에 가며 손에서 장구를 놓지 않았다. "다행히 고교 때 시작한 풍물을 대학에서도 할 수 있었고 군대 또한 풍물과 나를 이어줬습니다."

군 제대 후 국립국악원에서 2년간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 또한 양태양에게는 큰 축복일터. 국립국악원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고, 나만의 흥이 몸에 담겼다. 그리고 그 흥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나 지금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국립국악원 이후 경기도 국악단에서 2년 넘게 활동했다.

'나'만의 국악이 아닌 '모두'를 위한 국악을 위해 준비하던 차 국립문화예술진흥원에서 연수를 받았고, 이 곳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양태양은 "진흥원 수업 중 한 여성이 날 사로잡았고, 쫓아다니며 구애한 끝에 사랑을 얻게 됐다"라며 "지금 그 사람과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이들의 보금자리는 부평이다.

# 전세계로 '유흥'을 퍼뜨리다

부부가 국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험한 예술 세상에 지치고 다칠 수 있는 일 투성이지만, 부부는 국악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져 서로 지탱하며 오늘을 이겨내고 있다.

양태양은 자신의 흥을 찾고 싶었다. 수 년간 마음맞는 풍물 친구들과 숙의하며 나와 너의 흥을 '우리' 것으로 치들기 위해 도전장을 냈다. 그렇게 창단한 국악단체가 유흥, '흥이 있다'는 뜻이다. 한결 같이 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구성된 단체이다. 전통예술원이란 팀 앞의 호칭은 풍물에 그치지 않고, 우리 가락과 우리 멋을 모두 소화해 내품겠다는 각오로 붙였다.

양태양은 "유흥은 2015년 결성된 단체입니다"라며 "맛, 멋, 짓을 가미한 다양한 작품으로 전통성을 이어 젊은 음악과 몸짓으로 우리의 전통예술 세계에 알리고자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마음을 맞춰 예술 단체를 결성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그 단체가 해를 거듭할 수록 커가며 세계를 무대로 한다는 것은 대단하고, 주목해야 한다.

유흥은 2016년 제3회 대한민국 평화통일 국악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국회의장), 제9회 대한민국 전통예술 타악경영대회에서 종합대상(광주광역시장), 제16회 예산 전국 사물놀이 경연대회 금상(충청남도지사), 2018년 제20회 전국 농악명인경연대회 명인부 단체부문 대상(국회의장)을 탔다.

양태양은 "처음에는 4~5명이 모여서 유흥을 구성했고 지금은 10명이 서로의 분야에서 최고의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고 있는 만큼 불러주는 곳이 많습니다"라며 다음 공연을 머리 속에 그렸다.

유흥은 전국 각지 무대에 섰다. 그리고 전통 음악 행사가 열리는 세계 곳곳을 찾고 있다. "주말은 집보다는 무대에 설 때가 많습니다. 비행기 탈 시간이 많아 집에는 참 미안하지만 그 곳에서 유흥의 흥에 들썩이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 유흥은 ㈔인천풍물연구보존회의 '연희 노리판'에서 버꾸춤을 췄다. 버꾸춤은, 버꾸라는 전통 북으로 하는 풍물놀이를 일컫는다. 버꾸재비들이 버꾸를 치면서 추는 춤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유흥의 버꾸춤에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공연과 무대를 위해 기획하고 준비 중이다.

유흥의 작품 '뱅뱅뱅' 역시 그들만의 해석으로 꾸며낸 공연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이 중 버나놀이를 재해석한 '뱅뱅뱅'을 공연하면 관객들의 혼은 이미 무대 위에 올라섰고, 그 흥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어진다.

양태양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다. 시대에 맞는 풍물놀이를 준비하는 것이 벅차기 때문이다. 가야금과 아쟁을 배우며 자신과 '유흥'의 영역을 개척하려 애쓰고 있지만, 35세 양태양 역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경제적인 문제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그는 "5살 아들에게도 풍물놀이를 가르쳐주고 싶은데, 그게 제대로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라며 속내를 비췄다.

/글·사진 이주영·이아진 기자 leejy96@incheonilbo.com